이상경(선명법무회계법인 고문변호사·전 국회의원)
매년 이맘 때 쯤은 길고 힘들었던 수련의·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또는 월급쟁이 의사생활을 마치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들이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개업준비를 하느라 바쁠 때이다.
단독 개원도 여전히 많지만, 점점 세분화·전문화되는 의료수요에 맞춰 실력 있는 전문의들이 동업을 하는 경우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동업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뜻 맞는 동업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파트너를 구하더라도 서로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동업계약을 맺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성공적인 동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동업계약 자문의 경험)을 살려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싶다.
첫째,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계약체결을 잘 해야 한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우리나라 국민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의사들간의 동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경우 선배 의사들의 경험과 조언 또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동업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같다.
동업계약은 민법상 조합계약에 해당한다. 조합계약은 정형화된 틀이 없고 당사자의 합의된 의사에 따라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하게 이뤄진다. 의사들의 동업계약서는 통상적으로 ①동업계약의 참가 당사자와 출자지분 ②경영 의사결정의 방법 ③수익의 배분방법 ④동업계약의 기간 ⑤동업의 해소방법 ⑥동업관계가 청산되거나 일부 동업자가 동업관계에서 탈퇴할 경우 지분의 계산 방법 등으로 구성된다.
계약 조항 중에서도 기존의 병원에 새로운 의사가 참여할 경우 지분출자를 얼마로 할 것인지, 탈퇴할 경우 탈퇴자의 지분을 어떻게 계산하고 내보낼 것인지 등 진입과 탈퇴에 대한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분란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탈퇴 시에 출자지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가장 공을 들여 만들어야 할 조항이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동업계약서에 위와 같은 조항들이 들어는 있지만, 정교하게 돼 있지 못해 막상 분쟁이 생기면 계약서가 별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뿐만아니라 사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계약서 본연의 기능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민한(그래서 두루뭉수리하게 규정하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중요한 조항에 대해 상세하고 섬세하게 규정해야 한다. 잘 만들어진 계약서는 훌륭한 예방주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출발이 좋으면 즉 동업계약을 잘 체결하면 반은 성공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둘 이상이 동업을 하면 예기치 않은 많은 갈등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좋을 때는 웬만한 문제들은 서로 양해가 되지만 어려워지면―환자 수가 감소하거나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조그만 마찰이나 다툼이 큰 균열을 야기하곤 하는 것이 상례다.
이럴 때는 계약서의 조항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칫 하면 동업자 사이의 작은 갈등이 큰 갈등으로 확대되고 감정적 충돌로 이어져서 동업계약 자체가 삐그덕 거리다가 깨지게 된다. 좋은 선후배·동기 관계가 동업 때문에 서로 원수가 돼 등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함께 일하고 싶은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업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소개 하고 싶다. 필자 주변에 친분이 있는 의사들이 많아서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
평소 자주 보는 변호사들과 회계사들(공교롭게도 필자가 속해있는 법무법인은 회계법인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 몇 명과 함께 '개원의를 위한 위원회'를 하나 만들었다. 이 위원회에서 동업을 시작하는 의사들에게 계약서도 만들어 주고, 가끔 그 의사들과 식사도 한다.
필자가 자문해 작성한 동업계약서에는 반드시 '병원을 운영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위원회에 자문을 구하고 위원회가 조언을 하면 우선적으로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삽입한다.
위와 같은 조항을 근거로 위원회가 이를테면 동업의사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분쟁조정위원회', 경영자문을 위한 '경영자문위원회'의 역할을 해왔다. 경영상의 의사결정 문제 예컨대 추가자금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 차입할 것인지 동업자들이 추가적으로 출자할 것인지, 은행차입의 경우 엔화대출을 이용할 것인지 여부(한 때 엔화대출이 의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필자는 엔화대출을 받지 말라고 강력히 조언했고 그들은 엔화급등으로 인한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효과적인 병원홍보방법이나 직원들 인사관리문제, 보험청구와 관련한 문제 및 세무적인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조언해주었다.
수익배분과 관련해 자칫 큰 분란이 생길 상황에서 위원회의 조언으로 위기를 넘기도 했고, 휴가를 늘리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의견차이(진료시간을 유지하느냐 휴가를 늘리느냐는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소득이 늘어나게 되면 의사들끼리 부딪치는 문제 중의 하나인 것 같다)를 조정해주기도 했다.
되돌아 보면, 객관적으로 이해를 조정하고 전문적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개원의를 위한 위원회'의 조언과 중재·조정 등으로 위기의 순간을 현명하게 넘겼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러한 '위원회'모델이 확대돼 많이 이용된다면 동업이 깨지는 사태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부득이하게 갈라서게 될 경우 또는 동업계약 당사자 중 일부가 탈퇴할 경우 매끄럽게 정리해서 서로 간의 앙금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동업을 하다가 갈라설 경우 동업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비해서 계약서에 상세한 조항을 두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동업 파트너 중 한 명이 탈퇴할 경우 그의 지분을 얼마로 평가할 것인지가 늘 문제되곤 한다.
안과병원을 예로 들어 보면, 계약서에 탈퇴시 파트너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에 관한 조항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①동업계약시 출자한 금액에 인플레이션율을 반영하고 정기예금 이자를 합한 금액을 돌려주는 방법 ②백내장수술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설을 갖춘 개인병원을 개설할 경우 필요한 비용을 돌려주는 방법 ③자산평가를 통해 출자자의 지분만큼 돌려주는 방법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조항들은 출자지분을 확정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들이어서 이를 둘러싸고 큰 분쟁이 발생할 소지는 적지만,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지분의 평가금액을 둘러싸고 이견이 발생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동업기간이 장기인 경우 인플레이션율과 정기예금이자율을 어떻게 계산한 것인지, 백내장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병원개설에 소요되는 금액을 얼마로 볼 것인지, 병원의 자산을 얼마로 평가할 것인지는 여전히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야 말로 위에서 말한 '위원회' 같은 외부의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문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위와 같은 평가에는 평가자의 객관성·전문성·신뢰성이 요구되는데, '위원회'가 그런 업무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의사들이 혼자 개원해 활동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동업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잘만 되면 동업의 장점을 잘 살려 서로 상생(win-win)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되면 좋던 선후배 사이가 서로 원수처럼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금의 노력을 들여 준비하고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자. 준비된 상태가 성공의 비결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