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 지음/도서출판 지누 펴냄/1만 2000원
글을 쓰는 의사 언니와 그림 그리는 동생이 서로 의지한 채 지나온 세월이 있다. 의사로서 거듭되는 분주한 일상 가운데에도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향기를 되새겨 온 언니는 동생에게 늘 든든한 언덕이었다. 언니의 글이 좋았던 동생은 자신의 그림과 함께 글처럼 살고 싶은 언니의 지나온 흔적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김숙희 원장(서울 관악·김숙희산부인과의원/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이 10여년간 의료계 안팎 언론에 게재했던 글을 모아 <풍경이 있는 진료실 이야기>를 출간했다.
저자의 이야기는 소통이 뿌리다. 저자는 15년간 홈페이지를 통해 환자들과, 그리고 세상과 라뽀를 만들어가고 있다. 환자들이 궁금해 하는 의학정보뿐만 아니라 진료실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삶의 거리를 좁힌다.
이와 같은 마음은 책 속 '새해를 맞이하며'에서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만 우리는 마음 속에 미리 봄을 만들 수 있다. 서로 상대방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서로를 불러주는 향기로운 꽃이 되고, 언 가슴을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서 서로를 품어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본다면 우리 마음 속에 이미 봄은 온 것이다……"
따뜻한 마음뿐이 아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원하는 저자의 의사론에도 눈길이 간다. 의사는 모든 의학의 기본이 되는 자연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고통과 죽음을 늘 가까이 하므로 철학과 종료과 윤리 의식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문학적 예술적 정서가 풍부해야 하고 자신의 품성과 외모에 이르기까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 진료에 임해야 하는 의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사람들이 의사라는 생각이다.
삶을 대하는 겸허함과 관조의 시선도 내보인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감추며,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실패록'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랑·연애·우정 관계의 실패에서부터 사회 적응과 투자 실패, 환자 관리와 경영 실패, 가족과 대인관계 실패, 건강관리 실패 등 무수한 실패담 속에서 저자의 삶을 만들어 온 '쓰디 쓴' 이야기가 있다.
예리한 통찰력을 앞세운 의료 현장에 대한 진단도 탁견이다. 의사들의 진출 영역 확대와 고착화된 의료 관행, 무상의료를 질타하면서 내놓은 고언이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부인과 진료실(임신, 경이로움과 두려움/산부인과 진료 당당하게 받는다/순결진단법/아직도 남아선호/여자의 아기/아주 작은 생명 하나라도/다문화 사회 결혼 이주민)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위하여(가깝고도 먼 사이/인터넷 의료 상담/과학적 진료와 인문학적 진료/선천성 기형 출산에 대하여/노인의 성/성폭행과 낙태) ▲의사로서 37년(응답하라 1990, 24년 개원일기/2014년 2월 다리가 부러졌다/기녀춤을 추고 패션 모델이 되다/실패록을 써야겠다/희망의 날개/한 해 결산 보고서/새해를 맞이하며) ▲의사가 진단하는 의료와 사회(의사들, 직업 선택의 폭을 확대하자/국민의 의료 관행이 변해야 한다/새 화폐 모델을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로/무상의료는 환상이다/창조경제에서 의료의 역할) ▲여행일기 여의사 4명의 좌충우돌 남프랑스 자유여행/연변에서 두만강 훈춘까지 ▲나의 삶, 나의 가족(유년기의 외갓집/고양이 이야기/버릴 것, 그리고 아주 오래된 것/새 하늘과 새 땅/하늘나라 가는 길).
책 표지를 비롯 단락을 달리할 때마다 풍경으로 자리한 17편의 그림은 과천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동생 김숙명의 작품이다(☎02-3272-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