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언제부터일까, 나는 가끔 진료실에서 길을 잃는다.
낡아빠진 몸이 여기저기서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부터일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꽉 막힌 진료실이 섬처럼 고독해지면서 그 증세는 더욱 깊어진다. 수심(愁心)이 깊어지기 전에 빠져나가야 되는데 그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길을 잃는다는 것이 그다지 싫지 않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문득 가슴을 적시는 풍경이 떠오르면 하얀 종이에 그리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길을 찾는 여정이라지만 나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오히려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 봄날 나를 매혹시키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으며 또 다시 길을 잃어버릴 기미를 느낀다. 멀리 포르투갈에서부터 날아와 나의 영혼 깊숙이 침입한 사내는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가 자기-자신-모름을 참을성 있게 그리고 강렬하게 분석하고 우리 의식의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일. 독립적인 그림자의 형이상학, 환멸의 황혼을 시로 기록하는 일보다 진실로 위대한 인간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없다."
기어이 길을 잃어버린 나는 마치 프로이트의 의자에 누운 것처럼 최대한 몸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도는 이미지들을 무의식적으로 기록한다.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까요 밤새 나를 보살폈던 책갈피는 팔 다리가 마비돼 천장을 둥둥 떠 다녀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우울과 망상의 찌꺼기들이 라면가닥처럼 엉겨 붙어 있어요 불안을 베개 삼아 페소아가 잠들어 있고 상실의 시대를 지나 온 하루끼가 쓰다 만 편지처럼 서성거려요 담장 너머 저만치엔 안개 자욱한 욕망이 보이고요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새로 생긴 절망이 나를 노려보고 있어요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까요 빨간 자전거를 탄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골목으로 나를 안내했어요 자아는 이드가 있는 곳에 세워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어요 시가 태어난 장소는 모두 다 마시거나 먹거나 싸는 곳이라고 말했어요 결국 나는 편지 겉봉투에서 다시 태어났어요
경기도 출퇴근 길 자동차 이어폰에서 툴툴거리는 인문 팟캐스트
의정부시 306 보충대 싸다횟집에서 처음처럼 울어대는 소주잔
용현동 송추 가마골 화장실 힘찬 비데 앞에서 주눅 든 오줌발
김연종내과 상비약 같은 권태를 청진하는 낡고 초라한 하꼬방
-<카우치에서 길을 묻다> 전문
의과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이후의 삶은 다분히 좌뇌형 인간이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학적 지식을 습득해 왔으니 말이다. 광속으로 발전하는 의학 지식을 따라가느라 나는 늘 숨이 가빴다. 동네의사로 자리를 잡은 이후 그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KTX를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의학적 지식에 대한 물리적 거리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심리적 간극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독서는 그 심리적 간극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열풍과 더불어 이런저런 책들과의 조우는 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또 다른 낯선 여행이기도 했다. 잠자고 있던 우뇌가 조금씩 깨어나는 느낌이었으므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가 삶에 대한 무지를 깨닫는 것이 아닐런지. 그것은 세상, 혹은 타인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무지를 깨닫는 일일 것이다. 내면 깊숙이 깃들여 있는 길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탐구하고 성찰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자신을 안다는 것은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의 말씀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헤라클레스에게 부여된 과제보다 어려우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보다 더욱 불길하다." 나는 잃어버린 길을 찾아 나섰다가 오히려 페소아의 주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대체 그 길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이 매혹적인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