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두노함(Do No Harm)

청진기 두노함(Do No Harm)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5.05.04 12:1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C 에게.

우선 축하하네. 자네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네. 그 날은 마침 동료 의사들 몇 명이 조촐한 모임을 갖는 자리였는데 우연찮게 자네를 만났지. 아버지의 카톡 사진에 있는 유년의 모습만 보다가 듬직한 청년으로 성장한 자네의 모습을 보고 새삼 세월의 힘을 느꼈다네. 이태 전 의과대학에 입학한 형에 이어 3부자가 모두 의사의 길로 합류 했으니 겹경사라며 두 배로 축하했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심성이 착해 동물들을 아끼고 보살피며 장래 수의사가 되고 싶어 했는데 의사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리고 의과대학에 다니는 형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네.

자네는 자의반 타의반이라며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그 말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편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살짝 걱정이 앞서는 건 우리에게 처한 의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기도 하겠지.

의료계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과 약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의료계의 배타적인 시각과 세상의 각박한 인심 등이 어우러진 비극적 합작품일지도 모르지. 선배 의사로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반드시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네.

아들의 친구이기도하고 친구의 아들이기도 한 자네와는 정확히 한 세대차이가 나지만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이없게도 동지의식이 느껴지는 걸 보면 직업의식이라는 것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이제 막 의과대학에 입학한 자네에게 부모의 심정으로 혹은 선배나 동료의 심정으로 몇 가지 당부를 드리려 하네.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상 의사라는 이름표는 평생 차고 다녀야 할 목걸이와도 같은 것이네. 귀찮으면 언제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장식품이 아니라 몸 속 깊이 새겨진 문신 같은 거 말이야. 이제 한낱 초짜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벌써 주위의 시선은 반의사가 되어 있을 걸세. 그러니 더욱 처신에 주의해야 할 것이네.

내가 존경한 모 교수님은 강의 첫 시간에 의사의 덕목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네.
"Lion's Heart, Eagle's Eye, Lady's Hand."

사자의 강인한 마음가짐, 독수리의 예리한 눈, 그리고 여인처럼 부드러운 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좌뇌와 우뇌의 조화로운 사용으로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인간이 되라는 뜻이겠지. 열심히 공부해 의학적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예술·문학·철학 등 다양한 방면에도 관심을 가져 치우치지 않는 의사가 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야. 그래서 진정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치료가 무엇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겠지.

모든 환자의 70%는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회복되고 환자의 5%는 아무리 힘을 다해 치료해도 불가항력인 경우이고 단지 15%의 환자만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 중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말일 것이네. 이것은 의사 생활 25년이 넘어선 나로서도 여전히 고민되는 문제라네.

교수님은 더 큰 글씨로 칠판에 적으셨지.
First, Do No Harm. 환자에게 해 끼치지 마라.

잘못된 치료를 해 환자를 그르치게 하느니보다는 환자를 그대로 두는 편이 현명하다는 뜻일 것이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방황하던 대학시절, 나를 따끔하게 질책해 의사의 길로 이끌어 주었고 의사가 되고 나서도 첫 번째 덕목으로 삼고 있는 말이네.

그런데 가끔 이 말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뜨끔할 때가 있다네. 간혹 그렇게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마다 나에게 묻고 또 스스로 답한다네. 이 질문은 자네에게 그리고 의사를 꿈꾸는 모든 신입생에게,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소심한 충고일지도 모르겠네.

다시 한 번 축하하네. 여전히 우수한 인력이 의과대학으로 유입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고 이제 막 의과대학에 입학한 자네에게 마냥 축하의 말만 해줄 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네.

설령 자네가 의과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도 인생의 선배로서 이 말은 꼭 전해주고 싶네.

'Do No Harm'(남에게 해 끼치지 마라).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