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손실보상 약속, 신종플루·사스 '데자뷰'?

메르스 손실보상 약속, 신종플루·사스 '데자뷰'?

  • 이승우 기자 potato73@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2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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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 신종플루·사스 때도 보상 공언...종식 후 '흐지부지' 약속 어겨
의료계 "이번은 공염불 되선 안돼...믿지 않는다고 다른 방법도 없어 참담"

메르스 사태에 따른 의료기관 손실에 대한 보상 약속이 정부 고위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국회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보상 약속이 지켜질지에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회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와 2003년 사스 유행 당시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의료기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앞 다퉈 약속했고, 국회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보상 근거 마련을 추진했지만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첫 확진자가 발생한 5월 20일 이후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가장 먼저 의료기관 손실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약속했고, 그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손실보상을 약속했다. 메르스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자 최경환 국무총리 권한대행의 약속이 이어졌으며 급기야는 박근혜 대통령도 의료기관 손실보상을 공언했다.

국회에서는 20개의 '감염법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 관리법)' 개정안이 봇물 터지듯 발의됐다. 이들 중 6개 의 개정안에는 의료기관 손실보상 및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신설 내용이 담겼다. 그중 2개 개정안에는 의료기관의 '유·무형 손실보상' 조항도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약속과 법적 근거 마련 추진이 현실화될 것이라 믿는 의료인들은 많지 않다. 신종플루와 사스 유행이 진정된 후 정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회는 법률적 타당성 공방을 벌이느라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보건복지부는 최근 국회에 전달한 메르스 관련 법안 검토의견에서 의료기관 손실보상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손실보상 대상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련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명확한 대상과 범위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손실 및 손해보상) 대상 및 지원 범위에 대해서는 예산당국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예산 확보는 사실상 기획재정부 소관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기획재정부 역시 '유·무형의 손실보상' 조항이 불명확하고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관련법 개정에 유보적 입장을 밝힘과 동시에 '간접피해'에 대한 보상은 과하다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20개나 발의된 감염병 관리법 개정안들에는 '구체적인 보상 범위를 정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모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는 "여야간 보상 대상과 범위에 대한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칫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신종플루와 사스 당시에도 여야간 법리공방 때문에 대다수의 관련법 개정안이 사장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복지위원실 관계자는 "발의된 메르스 관련법 개정안들 중 대다수가 '페이고(pay-go) 원칙' 즉, 법안 제출 때 재원 조달 방안을 의무화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며, 법 개정에 따는 비용추계서도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이런 개정안은 입법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보상 대상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법안에 대한 정확한 비용추계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원 조달 방안까지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입장과 국회의 상황을 전해들은 모 지역의사회 임원은 "정부는 이전에도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 위기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인들을 치켜세우며 헌신과 희생을 강요했지만,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보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이번에도 정부와 국회를 마냥 믿을 수많은 없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신종플루와 사스 때와 달리 메르스 확산에 따른 의료인, 의료기관의 피해가 너무 크다.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번에도 정부와 국회의 약속이 '공염불'이 될 경우 상당수 의료기관이 회생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의사회 임원은 "상황이 신종플루와 사스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 걱정되지만, 이번만큼은 정부와 국회를 믿어보고 싶다"면서 "정부와 국회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참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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