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쉬운 금연치료 따라잡기 ④
김재열 (중앙의대 교수·중앙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
몇 해 전에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한 다발의 책 선물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아들이 얼굴을 다쳐서 해당 분야의 전문의를 찾고 예약을 하는 과정을 도와준데 대한 일종의 답례였다. 그러니까 일종의 중개수수료(?)를 받은 셈이었는데, 그 책 중에 <총·균·쇠>라는 책이 포함돼 있었다.
상당히 두꺼운 분량의 인문학 서적이었지만, 인상적인 제목과 함께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경력에 이끌려서 책장을 넘기게 됐고, 인류 문명의 발전과정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후에 '인류의 기원과 진화과정'과 같은 주제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이와 관련된 책 몇 권을 찾아서 읽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담배의 세계적 유행이 현생 인류의 이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약 2∼3만년 전에 시베리아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 집단들이 인류역사에서 두 가지의 인상적인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첫째는 야생 늑대를 길들여서 개로 가축화하는데 성공한 사실이다.
개를 가족같이 사랑하시는 분들은 시베리아에 살았던 조상에게 늘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빙하기에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정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니코티나 타바쿰이라는 식물의 잎을 말려서 이를 파이프에 넣고 피우는 관습이다.
원래 니코티나 타바쿰은 해충의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것에 대항해서 니코틴을 진한 농도로 잎에 농축한 것이라고 한다. 애벌레가 니코틴이 농축된 잎을 갉아먹게 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면서 죽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잎을 말려서 피우게 되면 니코틴의 적당량(?)이 뇌에 전달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활용(?)했는지는 미스테리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만 유행했던 흡연은 15세기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면서 유럽에 소개되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을 통해 담배가 들어오게 된다.
경제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호흡기내과 의사이지만, 어쩌면 담배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커피·술·차 등도 마찬가지로 글로벌 히트상품이겠지만, 담배는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진 후에도 그 인기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다른 상품들과 차별된다.
필자가 담당하는 질환의 대다수가 담배로 인해 생겼거나, 또는 담배를 피울 경우 악화된다. 담배가 직접적 원인으로 인정되는 질환들은 만성폐쇄성폐질환·폐암·몇몇 간질성폐질환들이다.
담배로 인해 악화되는 질환은 천식·만성폐쇄성폐질환·간질성폐질환·기관지염·폐렴 등등 호흡기질환의 거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담배의 해를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건강한 흡연자(?)들은 이해를 할 수도 있지만, 호흡기질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흡연을 계속하는 사람의 심리는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호흡기환자들 중 일정한 비율에서 흡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호흡기분야의 대규모 임상연구 데이터를 살펴보면, 만성폐쇄성폐질환이나 천식같은 만성호흡기질환의 흡연자 비율은 대략 30% 정도이며, 다국가·다기관을 대상으로 한 큰 규모의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 사실이다.
만성심부전으로 타인의 심장을 이식한 후에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서도 다시 담배를 피우는 비율도 30%이다. 담배의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주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늘 외래를 방문한 신환에게는 흡연여부를 확인하고, 금연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본다. 이 때 흡연자들은 자신의 흡연력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흡연력은 년-갑(pack-year)으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하루 한 갑 10년을 피웠다면 10 년-갑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반한 보호자 특히 배우자나 장성한 딸이 있을 경우에는 바로 들키게 된다. "아니 무슨 하루에 반 갑? 한 갑 이상 피우면서" 이런 식이다. 흡연을 하는 분의 경우에도 어떻게든 적게 피운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본인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오래 전부터 진료를 다니는 70대 중반의 남성이 있다. 그 동안 급성 악화로 일 년에 몇 차례 단골로 입원한 경력이 있다. 젊을 때는 사업체도 운영하고, 집안에서도 매우 근엄하신 분으로 평소에 함께 오신 부인은 남편 옆에서는 목소리도 낮추고, 늘 눈치를 살피는 편이다.
그런데 이 분이 만성폐쇄성폐질환의 급성악화로 입원을 하게 되면, 며칠 동안은 관계의 역전이 발생한다. 평소에 조용하던 부인은 '내가 그렇게 말려도 피우더니 결국 이렇게 입원을 했지'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에, 목청이 커진다.
평소에 근엄하던 할아버지는 꼼짝을 못하고, 마나님의 눈치를 살핀다. 물론 이 분이 급성 악화를 자주 겪는 주요 원인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 있다.
하루는 한 흡연자에게 금연을 권유하고, 금연보조제를 처방한 적이 있다. 다음 방문 때 약을 복용했는지 물어봤는데, 아직 시작을 하지 않았단다. 그 이유는 "그 약을 먹으면 정말로 담배를 끊게될 것 같아서"였다! 장기간 담배를 피운 사람들은 금연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필자가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또 다른 사람은 금연을 권유했더니, 두 달쯤 뒤의 정확한 날짜를 짚으면서 그 때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날이 담뱃값이 오르기 전에 사둔 담배가 떨어지는 날짜라는 것이다!
담배를 끊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지만, 담배를 단 한번의 시도로 끊을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전문가와 상의하고 효과적인 금연보조제를 사용하면 금연 성공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연에 실패하는 비율이 아직 더 높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평균 6∼9번 정도 금연을 시도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금연을 권할 때 이렇게 꼭 덧붙인다. "선생님 실패하셔도 괜찮아요. 금연경력이 한 번 늘어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즈음 메르스로 인해 온 나라가 비상상황이다. 메르스는 감염자가 기침하면서 나오는 가래에 노출되면서 상대방이 전염되는 호흡기감염병이다. 가벼운 감기같이 끝날 수도 있지만, 폐렴으로 진행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아직까지 메르스에 대한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는 없지만, 그래도 메르스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자주 씻는 것, 그리고 손으로 얼굴 부위를 만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들이 그런 방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금연이다. 흡연을 하는 경우 상기도의 방어력이 떨어지면서 폐렴에 잘 걸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는 메르스를 걱정하는 흡연자들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메르스가 두려우면 담배를 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