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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는 보건소, 메르스에 '속수무책'
의사 없는 보건소, 메르스에 '속수무책'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07.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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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사 보건소장 60%, 보건소 의사 90% '계약직'
보건소 메르스 초기대응 부실 이유는 '전문성 부족'
▲ 전국 254곳 보건소장 임용 현황.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자료 및 의협 자료 재구성.

전국 보건소 의사인력 10명 가운데 9명은 3년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이거나 5년 계약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소장의 60% 가량은 의사면허가 없는 보건의무직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어 전문성이 요구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비롯한 신종 감염병 관리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7월 현재 전국 254곳 보건소의 보건소장 임용 현황을 파악한 결과, 의사면허가 있는 보건소장은 40.2%(101명)로 절반이 되지 않았다. 59.8%(152곳)는 의사면허가 없는 보건의무직군(보건·약무·간호·식품위생·의료기술)이 보건소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지역 보건소장 25명은 모두 의사면허가 있었으며, 부산도 16곳 중 13명(81.2%), 광주·대전·울산도 80% 이상이었다.

반면, 충북은 13곳 보건소 가운데 의사면허가 있는 보건소장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충남은 16곳 중 2곳(12.5%), 전남은 22곳 중 3곳(13.6%), 강원은 18곳 중 3곳(16.7%)에 불과했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45곳 중 13곳(28.9%), 인천은 10곳 중 3곳(30%)만 의사면허가 있는 보건소장을 임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 자료를 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전국 보건소에서 봉직하고 있는 의사는 총 887명. 이중 3년 군복무를 대신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가 60.3%(535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5년 계약직 의사는 31.8%(282명)로 비정규직이 92.1%에 달했다. 정식 의무직 의사는 7.9%(70명)에 불과했다.

보건소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시·군 지방자치단체에 설치하는 공공보건조직으로 ▲국민건강증진·보건교육·구강건강·영양관리사업 ▲감염병의 예방·관리 및 진료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사업 ▲노인보건사업 ▲공중위생 및 식품위생 등의 업무를 비롯해 의료인·의료기관·의료기사·의무기록사·안경사·공중보건의사·보건진료원·보건진료소에 대한 지도업무와 ▲응급의료 ▲약사에 관한 사항과 마약·향정신성의약품 관리 ▲정신보건 ▲가정·사회복지시설등을 방문하여 행하는 보건의료사업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건강진단·만성퇴행성질환 등의 질병관리 ▲보건에 관한 실험 또는 검사 ▲장애인의 재활사업 기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사회복지사업 ▲지역주민의 보건의료 향상·증진 및 이를 위한 연구 등에 관한 사업 등 지역의 공중보건 향상을 한 사업을 맡고 있다.

신현영 의협 대변인 겸 홍보이사는 "이처럼 방대한 보건소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전문성을 비롯해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보건소 업무의 핵심인 건강증진과 질병관리 업무 등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의사직의 대부분이 계약직이나 군복무를 대신하는 공보의라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메르스라는 감염병 위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보건소가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서 "보건소의 기능과 역할은 물론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가 보건소 관리·운영...감염병 대응 못해

보건소의 관리와 운영 권한을 보건복지부가 아닌 일선 지자체가 맡고 있다보니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문제를 확산시켰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보건소에 근무하고 있는 한 공중보건의는 "열악한 시설과 인력 뿐인 보건소에서는 메르스 의심환자가 오면 열을 재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면서 "메르스 발생 초기 지침에는 의심환자에게 문의가 오면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도록 안내하고, 의사로부터 의심 신고를 받은 뒤에야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했다"고 털어놨다.

김갑식 서울시병원회장은 "동네 병·의원에서는 메르스 의심환자를 진료할 능력이 없는데도 의심환자가 오면 1인실에 격리한 상태에서 보건소에 연락하고, 확진되면 격리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보건당국의 지침이었다"면서 "의료계의 건의를 받아들인 서울시가 6월 11일부터 보건소 직원이 민원인을 방문해 검체를 채취한 후 도 보건환경연구원이나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의뢰하도록 내부 지침을 바꾸면서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6월 15일 메르스 지역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 지역 보건소에 (가칭)메르스 선별진료소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각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심환자를 진료한 후 메르스가 아닌 경우엔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고, 의심될 경우 별도 격리조치 후 메르스 검사를 실시, 격리치료 여부를 가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보건소 선별진료소 운영에 필요한 인력은 각 지역의사회에서 지원하고,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기간 동안 보건소는 일반 진료 업무를 중단한 채 메르스 종식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다.

의협은 "선별진료소를 운영해 새로운 감염을 차단하고, 일반 환자들이 치료를 미뤄 병을 키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선별진료소를 제안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의협이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제안하자 보건복지부는 16일 "중앙과 지방간 총력대응체계의 하나로 지방자치단체가 보건소를 통해 방역 등 감염병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메르스 발생지역 보건소의 경우 만성질환 관리 등 기존 업무는 잠정 중단 또는 최소화하고, 기존업무 인력은 즉각 메르스 대응업무에 투입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17개 시·도 보건과장 회의와 전국 보건소장 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알리고, 협조를 당부했다고도 했다.

무늬뿐인 선별진료소...메르스 환자 무방비

"보건소가 감염병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와는 달리 서울지역 25개구 보건소 중 강남구·송파구·강동구·광진구를 제외한 21개 보건소는 메르스 선별 진료가 아닌 고혈압·당뇨 등 일반환자 진료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보건소 중에는 관내에 확진환자가 발생했지만 만성질환 관리 등 기존 업무를 계속하고 있어 보건복지부 발표를 무색케 하는 곳도 있다.

메르스 임시진료소에는 의사를 배치하지 않고, 간호사가 상담과 체온측정 등 초진업무를 하는 곳이 12곳에 달했다.

보건소 건물 내에 의심환자가 진입하기 전에 가려낼 수 있도록 의료인력을 배치, 발열검사·손씻기·마스크 착용 안내를 통해 감염원을 차단하는 것이 감염관리의 원칙. 하지만 발열이나 기침 환자는 선별진료소를 거쳐 오라는 안내판이나 홍보물 몇 장 붙여 놓은 것이 전부다.

감염 예방을 위해 별도 공간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하도록 규정한 감염관리지침을 무시한 채 보건소 건물 내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한 보건소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서울지역 한 보건소 입구. 보건소 건물 내에 의심환자가 진입하기 전에 발열검사·손씻기·마스크 착용 안내를 통해 감염원을 차단하는 것이 감염관리의 기본 원칙이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대부분 보건소가 무방비 상태로 파악됐다.
▲ 고신대복음병원 의료진들이 병원 정문에서 발열검사를 통해 메르스 의심환자를 선별하고 있다. 국민안심병원은 선별검사를 통해 감염질환을 예방하고 있지만 상당수 보건소는 이같은 감염병 예방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한 지역의사회장은 "감염관리에 관한 보건소의 대응체계가 이렇게 허술한 데 의심환자가 보건소에서 진료를 봤다면 보건소를 폐쇄하는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새로운 신종 감염병이 계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만큼 보건소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과 역할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지자체 소속 보건소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리·감독기능이 미약하다보니 신종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일반 진료를 제한하고 메르스 선별진료와 방역에 나서야 한다는 국가의 명령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보건소가 감염병 방역과 질병 예방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선심성 일반 진료 늘리기에 힘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마약·알콜·게임 중독 예방 상담과 가정·성폭력 치료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있는 만큼 보건소의 기능을 중독·폭력 예방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며 "메르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부실한 국가방역 체계와 의료전달체계 붕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건소의 기능을 재정립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소 홈페이지 메르스 정보 부실...없느니만 못해

중동호흡기증후군과 관련한 일일 현황을 매일 업데이트 하고 있는 강동구보건소나 홈페이지 초기화면이나 팝업창을 통해 메르스 정보를 안내하고 있는 송파구·강남구·광진구·도봉구 보건소와 달리 적지 않은 보건소들이 메르스 정보 제공에 인색하다.

성북구보건소 홈페이지에서는 메르스 관련 정보를 찾기는 어렵다. '예방 및 신고 안내' 팝업창을 올려놓은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팝업창을 접속하면 새로 바뀐 질병관리본부 메르스 핫라인 홈피(http://www.mers.go.kr/mers/html/jsp/main.jsp)가 아닌 옛 메르스 핫라인 홈피(http://www.cdc.go.kr/CDC/cms/content/33/63033_view.html)로 연결된다. 질병관리본부 핫라인 전화도 6월 11일 109번으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옛날 번호(043-719-7777, 7244)를 안내하고 있다.

메르스 정보도 부실하다. 성북구보건소 건강관리과가 5월 22일 올려놓은 공지사항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예방수칙 안내'이 전부다. 하지만 이 예방수칙은 구 버전으로 발열 기준이 38℃(현재 37.5℃)로 되어 있다.

▲ 성북구보건소 홈페이지의 팝업창을 클릭하면 옛 메르스 핫라인으로 연결된다. 보건소의 부실한 메르스 대응 태세의 단면이다.

동대문구보건소는 자주찾는 질문에 2010년 12월 급성열성호흡기질환 예방을 위한 준수사항·조류인플루엔자 예방수식·질의응답 등을 소개하고 있다.

메르스와 관련한 자료는 6월 6일 보건당국이 안내한 메르스 바로알기 그림 파일이 최근 자료다. 이 그림파일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메르스 핫라인 전화번호(043-719-7777, 현재는 국번없이 109번)를 안내하고 있다.

인천 서구청, 비의사 보건소장 임용...전문성 역행

메르스 초기대응 실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역학 전문인력의 부재와 보건소를 비롯한 공공의료시스템의 부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서구청이 보건소장을 비의료인으로 임용하려 하자 인천시의사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인천시의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비롯한 신종 감염병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의무직을 보건소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면서 "지역보건법에도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을 우선해서 보건소장으로 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구보건소에 2명의 의무직이 근무하고 있는 만큼 의사가 부족한 경우 예외적으로 보건의무직군에서 보건소장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는 지역보건법 예외 규정 역시 해당사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은 "현행 지역보건법에는 의무직이 2명이나 있기 때문에 보건직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면서 "관이 법률을 따라야 국민도 지키는 것이지 관이 법을 어겨서야 되겠냐"고 반문했다.

인천시의사회는 "서울은 25개 보건소 가운데 의사출신 의무직 보건소장이 100%이고, 부산·대전·광주 등 다른 광역시도 80%가 넘는 데 인천은 10곳 보건소 가운데 계양구·남동구·강화군을 제외한 7곳이 의사면허가 없는 공무원 보건소장"이라고 밝혔다.

"보건행정의 수장에서부터 하급직원까지 의료전문가의 부족으로 인해 초기대응에 허둥대다가 감염질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지적한 인천시의사회는 "지금이야말로 왜곡을 시정하고, 사회 곳곳의 비정상화된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허약하고 취약한 보건의료체계를 바로세우기 위한 첫걸음이 보건소장의 의료전문가 임용"이라고 강조했다.

▲ 인천시의사회 임원들이 7일 인천시청에서 서구 보건소장을 의사면허자로 채용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직의사 역량 강화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해야

의사가 보건소장에 지원했음에도 비의사 출신을 보건소장에 임용하는 이유에 대해 지자체 관계자는 "보건소장은 간호사·약사·의료기사·영양사·행정 등 다양한 구성원을 이끌어야 하고, 지자체와 여러 유관단체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인구집단 건강관리나 지역보건사업을 해야 하는 데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로 지난 3월 열린 '공공보건의료인력의 현황과 문제점, 역량 강화 방안' 주제 의료정책포럼에서 서경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의사출신 보건소장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 '보건사업 행정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충분한 교육 기회 부족'을 꼽았다.

서 연구원은 "의사출신 보건소장 임용을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건강증진 ▲질병예방·관리·진료 ▲의료인·의료기관 지도 ▲응급의료 ▲의약·식품·위생관리 ▲재활 및 사회복지 ▲기타 지역주민 및 특수보건 등 보건소 업무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도입을 제안했다.

김혜경 수원시 팔달구보건소장은 "예전에는 의대에서 보건소로 실습을 나왔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지역사회보건을 가르치지 않는다"면서 "의사들이 인구집단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를 5년 계약직으로 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가 및 지방공무원법 임용령을 개정,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근로환경을 마련함으로써 지원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종희 서울시 강동구보건소장은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계약직으로 5년 근무한 후 재임용 절차를 밟게 되는 데 5년 전 급여액으로 떨어진다"며 "불합리적인 것들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보건소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현영 의협 대변인 겸 홍보이사는 "감염병 예방·관리·진료의 최일선에 나서야 할 보건소의 조직과 대응체계가 부실하다보니 메르스 초기대응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보건소가 진료·건강검진·만성질환 관리 등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체계는 물론 기능과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의료계 자체적으로 인구집단 건강관리나 지역보건사업 등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면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역량있는 의사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임용 규정을 정비해야만 보건소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고, 메르스와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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