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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몽파르나스 전설, 모딜리아니가 왔다
파리 몽파르나스 전설, 모딜리아니가 왔다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5.07.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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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유화 70여점 선뵈

▲ 머리를 푼 채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 1917년, 60 x 92.2cm, 캔버스에 유화, 오사카 시립 근대미술관, 일본 ⓒ Osaka City Museum of Modern Art, Japan.


파리의 베르트 베일 갤러리에서 열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에 전시된 네 점의 누드 작품 중 한 점이다. 모딜리아니가 남긴 여인의 누드 작품 가운데 밀도 있는 색채사용과 완벽한 윤곽과 절제된 표현력, 그리고 모딜리아니 작품에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아몬드형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드문 작품으로서 누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 몽파르나스의 비운의 화가 모딜리아니를 조명하는 국내 최대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10월 4일까지 열리고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는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의 대표 화가이자, 35세의 짧은 생을 통해 파리 몽파르나스의 전설이 된 이탈리아 태생의 화가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던 그의 삶과 예술…. 모딜리아니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에 자리한 심오함을 탐구하기 위한 방식으로 인물화라는 일관된 주제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회고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모딜리아니의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1906년부터 1920년까지의 유화·드로잉 작품 70여 점으로 이뤄졌으며 남자의 초상·여인상 기둥·여인의 초상·여인의 누드·종이작품·모딜리아니와 모이즈 키슬링 등 여섯 개의 주제로 기획 구성된 전시관은 관객들이 모딜리아니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해볼 수 있도록 했다.

현존하는 모딜리아니의 유화작품은 400여점이 채 안될 만큼 화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매우 적다. 이번 전시는 파리 시립미술관·피카소 미술관·런던 테이트·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뉴올리안즈 미술관·톨레도 미술관·퐁피두센터·오랑주리 미술관 등 전 세계 40여 공공미술관 및 개인소장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 뿔뿔이 흩어져 소장돼 있는 진품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초기에서부터 말기에 이르는 대표작들을 테마에 따라 구성했다.

▲ 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 1918년, 55 x 38cm, 캔버스에 유화, 이스라엘미술관, 예루살렘 ⓒ The Israel Museum, Jerusalem, Israel / Gift of Stella Fischbach / to American Friends of the Israel Museum / Bridgeman Images.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연인 잔느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양손을 모아 무릎에 얹은 채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그녀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배경에 등장하는 침대와 침대 테이블 그리고 부드러운 빛의 효과와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채 처리는 둘만의 은밀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애정을 물씬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그들에게 닥쳐 올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모딜리아니는 신비로운 작가로 알려진 화가다. 가난하고 불운했지만 누구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화가 모딜리아니…. 잔느와의 러브스토리와 요절한 삶의 드라마틱한 요소들, 작품속 독특한 형태의 인물 표현들이 그를 더욱 신화적인 인물로 몰고 갔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관된 주제는 사람이다. 특히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아프리카 원시조각들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형태의 왜곡과 가면 같고 평면적인 표현기법 등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화폭위에 끄집어 낸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말한 모딜리아니. 그는 인물이라는 테마에 깊이 빠져있었다. 단순히 화폭에 형태를 그려 넣기 위한 대상로서의 인물이 아닌 모델과의 교감을 원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닌 무의식이다." 라고 한 그의 말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눈동자가 없는 텅 빈 눈으로 아득한 내면의 깊이를 담아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한 화가 모딜리아니. 이번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화가로서 혹은 인간으로서의 그 예술 발자취와 의미를 감상하고 되짚어 보는 좋은 전시일듯 하다.
 

▲ 누워 있는 누드(셀린 하워드의 초상), 1918년, 65 x 100cm,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스위스 ⓒ Private Collection, Switzerland.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유대인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병약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이탈리아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하며 각 지역의 미술관을 방문한 모딜리아니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깨닫고, 그 이후 예술학교를 다니며 미술을 배우게 됐다. 1906년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로 넘어오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당시 예술의 중심지 몽파르나스에서 키슬링·수틴·피카소 등과 친분을 맺으며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1917년, 베르트 베이유 갤러리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개최하지만, 그의 누드화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으며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허망하게 놓치고 만다.

결국 1920년, 결핵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의 삶과 작품이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된다. 모딜리아니 예술의 독창성은 그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근현대 미술사에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하며, 오늘날까지 '몽파르나스의 전설'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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