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방임하면 건강보험제도 지속 못해...보건복지부, 보건의료계획 세워야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보건의료발전계획' 메르스 보다 더 시급"
의료 인력·시설 등에 대한 보건의료계획이 없다보니 의과대학 설립이나 유명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 정치인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하는 한심한 지경이 되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이슈 페이퍼' 최근호에서 '의료전달체계 정립보다 의료계획이 시급하다'는 기고를 통해 이 같이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선 "우리나라는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자유재라는 인식을 갖고 거의 자유 방임형 의료체계를 유지해 왔다며 "국민의 의료를 보장하는 건강보험제도에서는 환자들에게 보험수가가 전혀 가격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해야 하고, 시장접근이 아니라 필요도 접근에 의한 계획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공급자에게 보험수가가 중요하다는 점만 인식하게 해 의료정책에서 의료를 자유재로 착각하도록 내보내는 신호가 오늘의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진단하고 "보건의료분야의 잘못된 개념으로 빚어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보건의료계획의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건강보험제도로 의료를 보장하는 모든 국가가 보건의료계획을 갖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면서 "보건의료계획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구체화한 다음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와 단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과제를 구분해 실천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보건의료기본법에 의한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라고 밝힌 이 교수는 "계획에 따라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해야지 새로 취임한 장관이 이야기하는 의료전달체계도 확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제공하는 의료의 이념적인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야 보건의료계획이 실효성을 갖는다"면서 "현재와 같이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로 규정하는한 자유방임적 의료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료보장제도에서의 의료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규범적인 공공재라는 이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의료가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라는 이념에서 접근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같다는 신호로 국민과 의료계가 받아들이게 되고 의료체계는 자유방임형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다 보니 진료권도, 환자의뢰체계도 국민들이 불편하다고 불평하게 되고, 공공재라는 규범적 이념이 없는 정부도 국민의 불평을 받아들여 결국 전달체계를 정립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 이용을 자유방임형으로 시장에 맡길 경우,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높은 의료이용으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거나 보험료 부담이 천정부지로 높아질 것"이라고 언급한 이 원장은 "인구고령화와 만성질병이 중심이 됨에 따라 의료는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껴야 하고, 의사에 대한 교육훈련과 방문간호를 위한 서비스 제공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재가요양시설과의 연계 조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중보건(public health)의 개념과 내용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국의 보건소들이 사업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공중보건사업은 소홀히 하고, 반면에 사업효과가 당장 가시화되는 의료만 강조하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자 우왕좌왕하고, 보건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도 어려웠다"고 지적한 이 원장은 "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해 공중보건의 역할을 명확히 정립하고, 공중보건사업에서 의료가 기여할 역할, 건강증진에서 의료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의료이용을 시장 수요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적정 이용량에 대한 필요도 추정이 요구된다는 것을 뜻하므로 보건의료계획에는 의료 인력이나 시설 등에 대한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며 "의료 인력이나 의료 시설 등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의과대학 설립이나 유명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 정치인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하는 한심한 국가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료권을 설정하고 1차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1차 의료의 강화라 하면 주치의제도를 통한 문지기 제도만 생각하는데 이 제도는 너무 도식적이고 주민들도 외면하는 제도라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며 새로운 접근 전략으로 ▲1차 의사를 중심으로 간호사·영양사·운동처방사·보건교육사 등이 팀을 이루는 통합의료모형 ▲질병관리모형 ▲Medical Home 등을 제시한 뒤 "1차 의료를 팀으로 구성해 현재의 의원과 다른 모습으로 주민에게 편익을 줄 때 진료의뢰체계는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묶음형 진료비 지불방법과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위해 장기요양보험의 서비스 제공체계와 연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경험한 것은 감염관리가 의료 질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현재의 의료가격으로서는 우리나라의 어떠한 병원도 감염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의료이용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GDP에서 차지하는 국민의료비의 비중은 서구의 산업화 국가보다도 훨씬 낮다는 것은 그만큼 보험수가가 낮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이 감염관리를 위시한 질 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또 "특히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이 다인실로 되어 있는 것도 감염관리를 위한 수가를 책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