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없네

[신간] 나는 없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10.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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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헌 지음/황금알 펴냄/9000원

 
"늦은 첫 시집이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부끄러움도 허영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꿨습니다."

2011년 <문학청춘>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이 그의 지난 '한 시절'을 묶어 첫 시집 <나는 없네>를 출간했다.

시인은 시집을 통해 반복되는, 무기력한, 피로한, 서러운, 뼈아픈, 허무한, 뭉클한, 따뜻한, 행복한, 가슴 벅찬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펼친다. 그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시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담담히 토해내는 시어들은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문학의 고갱이는 진정성이다. 시인은 일·부모·자녀·질병·이별·취직·여행 등 누구나가 겪게되는 삶의 일편들을 꾸밈없이 정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 속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여백의 풍경이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 '나는 없네'에서 그가 바라보는 일상은 '없는 나'만큼 비어있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사라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상실되고 있는 '나'이며, 살아가는 동안 상실은 계속된다. 상실한 나는 나이면서 나가 아니며, 부재하면서 존재하는 나이다.

이와 같이 상실과 부재를 내면화하는 시인이 갈고닦는 삶의 자세는 '겸손'과 '사랑'이다. 시인에게는 적극성보다 소극성을, 능동성보다 수동성을 충실히 실천하는 길이야말로 '없는 나'가 펼칠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이다. 그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며 빌려줌으로써 타자를 향한 '적극적인 수동성'을 시 속에 펼친다.

시 가운데는 상상력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현실과 경험을 풀어내며 의사만이 다가설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체험과 내밀한 이야기를 읊조린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한편으로는 의사로서 겪는 고충도 가감없이 토해낸다.

마종기 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그의 시는 되도록 쉽고 정직하게, 그리고 착하고 정결하게 시의 원형질을 지키려는 의지가 곳곳에 보여 읽는 이를 기쁘고 따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모든 시인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의미를 간직하고 펼쳐 보이는 용기가 우리를 새삼 긴장시킨다"고 말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김수이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시인은 삶의 심연 앞에서조차도 과장하지 않고, 애써 은폐하거나 에두르지 않으며, 화려한 장치나 수사를 동원하지 않는다. 꾸밈없이 정직하게 시를 쓰는 것만이 시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는 듯이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행과 연을 이어간다"고 덧붙였다.

▲잘가라, 그 시절 ▲어머니 손잡고 ▲거미는 무엇으로 사는가 ▲누가 이 나무를 모르시나요 ▲구름 인연 등 5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모두 66편의 시가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다.

홍지헌 원장은 현재 문학의학학회 이사 및 한국의사시인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의사수필동인 '박달회' 회원으로 해마다 수필집을 펴내고 있다(☎ 02-2275-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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