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회 지음/북랩 펴냄/1만 7000원
한민족 성(性)의 역사를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는 첫 성 역사서 <한국성사>가 출간됐다.
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가 쓴 이 책은 기록된 역사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의 역사를 뒤좇는다.
성학(性學)은 말 그대로 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 영역은 광대하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국내에 외국의 성 역사와 관련된 번역서는 이미 출간돼 있지만 정작 우리의 성 역사를 다룬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저자는 "원래 성(性)은 생산과 풍요뿐 아니라 친밀감을 가져다주는 자연스럽고 성(聖)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종교·정치·윤리·도덕·법률 등과 충돌하면서 수없는 가면을 쓰게 됐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성의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에 대한 가치로는 쉽지 않다. 지금의 잣대로는 너무 다른 문화 속에 살던 과거 조상들의 성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을 '생물학과 시(詩)의 접합'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시가 되어버린 생물학'이라고 말한다. 현미경으로도 잘 안보이지만 그 길이가 사람의 키보다 더 긴 DNA들이 남의 세포로 들어가서 서로 그 내용물을 교환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그렇게 면면히 하나의 종을 이어가는 생식과정에서부터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라도 버릴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 보면 너무 불합리한 희생의 마음까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은 개념상 어느 장르에 속하는지 잘 몰라서 건강이라고도 하고, 혹은 의학 또는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건강·의학·심리학의 많은 부분들이 성에 속한다고 말한다. 또 오랫동안 유교 문화의 영향아래 놓였던 우리는 성에 대한 기피와 터부 때문에 공개적으로 성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이는 오늘날의 잘못된 성문화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의 역사는 세 갈래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성담론적 요소다. 설화나 야사의 형태로 기록된 내용들에서 얻어지는 부분 같은 것을 의미한다. 또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당시의 기록 또는 회화, 조각 등을 보고 짐작해야 한다.
둘째, 문화인류학적 측면이다. 문화인류학적으로 성을 바라보면 또 다른 역사의 필연적 흐름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진화성학적 발전과 마주하게 된다. 남녀가 성 표현을 하면서 갖게 된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게 왜 이렇게 좋을까' 등의 의문들이 인간의 가치·종교·가족제도·결혼·성 풍습 등에 영향을 미쳤고, 윤리·도덕·사회제도·법률 등에도 간섭하게 됐다.
세 번째는 생물학적, 심리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인류는 지난 40만 년 동안 간단없이 성적 진화를 계속해 왔다. 다윈은 진화를 적자생존의 진화와 성적진화로 나누었다. 지금 우리의 성적 '몸'은 수십만 년을 진화한 거의 완벽한 모습이라고 믿어도 좋다. 저자는 우리의 성적 인격이나 정체성을 느끼는 심리적 부분은 시대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흘러왔으므로 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역사이전 ▲고조선 ▲부여 ▲삼한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고려 ▲발해 ▲조선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현대 등으로 시대로 구분하고 각각의 시대상에 나타난 성학과 연관된 주제들을 사건중심으로 상세하고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현재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대한폐경학회장·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장·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을 맡고 있으며,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초대회장·한국성문화회 초대회장·대한성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은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추기의 성> <아밋골너머 32년> <성학> <학습된 경험>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이 있다(☎ 02-2026-5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