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가을 어느 날 만난 친구

청진기 가을 어느 날 만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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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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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원장(·매거진 반창고 발행인·연세비앤에이의원 대표원장)

▲ 전진희 원장(·매거진 반창고 발행인·연세비앤에이의원 대표원장)

가을에 접어들면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이 느껴질 즈음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여느 때처럼 가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을 한 후 진료실에서 진료 준비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대기실에서의 소란이 고스란히 옆에서 전해지는 듯 합니다.
"아니야. 무섭지 않아. 우선 들어가자. 응? 응?"
당황하고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안가! 안 해!" 연신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두 마디 외침 입니다.
진료실을 나와 대기실에 나가보니 아이는 병원 문을 잡고 들어오지 않으려고 몸을 밖으로 내빼며 울고 있고 엄마는 아이 손을 잡아 끌며 병원으로 들어오려 하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생 정도의 큰 눈은 가진 여자아이였습니다. 진료 접수를 하는 간호사들은 눈앞의 광경에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해하며 문을 마주하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크게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자 엄마는 아이에게 독감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데려왔지만 병원 문에 들어서지 않고 울기만 하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난감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오듯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문을 잡고 버티고 있어 가을 아침의 서늘한 기운에도 엄마의 얼굴은 빨개지고 땀을 흘리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우선 진료실로 다시 들어가서 흰 가운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청진기를 집어 들고 대기실로 나갔습니다.

"아침에 반가운 우리 친구는 누구인가요?" 아이는 눈을 들어 저를 쳐다 봅니다. 누군가를 탐색하듯 위아래로 쳐다 보며 다시금 문을 꼭 잡습니다.

아이의 엄마에게 "엄마 , 더우시죠 잠시 안에 들어가 앉으셔요" 하며 아이 손을 놓게 하였습니다.

아이는 금세 손이 놓이자 병원 밖 복도에 놓인 의자로 달려가 앉습니다. 의자에 앉은 아이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무서웠구나?" 하니 누군지 묻지도 않고 금세 물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 여기가 왜 무서워?"
"병원이잖아요?"
"병원이 왜 무서워?"
"아프잖아요?"
"아프면 병원이 고쳐주는 곳은 아니고? "
"어? 그래도 무서워요"
"음 그렇구나."하며 아이와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다행히 오전에 환자들이 많이 오기 전이어서 아이와 긴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내 "근데 누구세요?"
"응? 나 의사선생님인데."

"어…. 그래요. 근데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저랑 얘기할 수 있어요?" 아이는 경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아이는 나와의 대화시간 동안 나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사그라졌습니다. 그렇게 복도에서 나눈 3분의 대담으로는 독감 예방접종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아이가 병원에 오게 되면 덜 울고 덜 보채며 병원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병원 복도에서 청진을 하기도 했던 작은 아이는 나의 환자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어엿한 숙녀가 되어 동생을 데리고 진료를 보기도 합니다.

가을이 되면 아이와 나누었던 복도에서의 3분 대담이 생각납니다. 의료의 일선에서 환자들과 잠깐의 대화는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오랜 시간 동반자로 만들어가는 시작이 됩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와의 3분의 대화를 위해 의사와 환자에게 인간적인 친밀하며 합리적인 의료 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어느 가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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