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없도록 법·제도 뒷받침 해야"...법의학과 의료윤리 조명
새 대한법의학회장 최영식 NFS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 선출...내년부터 임기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20일 고려의대 유광사홀에서 열린 제39차 추계학술대회에서 "대량재해 발생 시 개인식별·법의혈청학·법치의학·법의곤충학·법의영상학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며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서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희생자의 개인식별 등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수준으로 향상했다"고 밝혔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을 단시일에 해결하면서 한국의 법의학 수준이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대구지하철 참사(2003년)·세월호 참사(2014년) 등 대량참사가 발생했을 때 외국 법의학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2014년 10월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국내 기술로 개발한 '대량재해 희생자 신원확인 시스템(MIM)'을 외국에 전수할 정도로 법의학 기술이 발전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법의학 발전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책이나 제도는 아직 미진한 실정이다.
장정식 국립과학수사연구원(NFS)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 의무사무관(법의관)이 이날 발표한 '2014년 부검률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총 사망자 26만 7672명 가운데 13.3%(3만 5478명)가 변사자로 집계됐다. 이들 변사자 가운데 NFS나 관학협력의대에서 부검이 실시된 것은 15%(5324건) 가량. 전체 사망자 대비로는 2.0%에 불과하다.
박 회장은 "선진국에서는 사망자에게 조금의 의심만 있어도 변사자로 취급하고, 이 중 15∼30%를 부검한다"며 "단 한 명이도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법의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의학에 대한 인식이 낮다보니 제도적인 뒷받침도 허술한 실정이다.
엄창섭 고려의대 교수(해부학교실)는 '법의학과 의사윤리' 주제발표를 통해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에 개인 식별이 안된 상태에서 보유하고 있는 사체 조직의 경우 처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어 마냥 보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법률을 개정해야 하지만 죽은 이들은 말이 없고, 표도 없으니 법률 개정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신에 대한 부검윤리도 의료윤리와 마찬가지로 엄숙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엄 교수의 주장.
엄 교수는 특히 "시신에서 얻은 사체의 일부를 전시까지 하며 상업화 하는 경향이 있다. 사자의 동의는 물론 기증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며 "최근 들어 시신을 활용한 교육·연구·산업 등에서 활용이 증가하면서 해부학자·병리학자·법의학자 외에 해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넓히는 데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 정기총회에서는 최영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이 내년 1월부터 2년 동안 학회를 이끌어 갈 새회장에 선출됐다.
최 차기회장은 1983년 한양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부속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전공의과정을 거쳐 1987년 전문의자격을 취득했다. 1991년 법의관으로 NSF에 발을 들였다. 법의학부장을 거쳐 2013년 12월 초대 서울과학수사연구소장에 임명됐다. 학회에서 국제교류협력위원장을 맡아 2014년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기여했다.
최 차기회장은 "검시 집행 책임은 검사가, 집행은 경찰관이, 검안서 작성은 의사가 하고 있고, 변사자 부검은 반드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며 "최근 들어 형사사건뿐만 아니라 민사 사건에서도 보험 수급 문제를 놓고 현장 검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만큼 여러 부처와 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검시제도를 선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법의학회 학술상은 지난해 학회 학술지에 총 5편의 논문을 발표한 나주영 NSF 광주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연구원이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제3회 '도상 법의문화상'은 월간 조선 오동룡 차장이 받았다. '도상 법의문화상'은 법의학 발전에 공헌한 언론 및 문화계 인사를 선정, 학술대회 때 시상하고 있다. 도상(度想)은 법의학 선구자인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의 호.
오 차장은 30년 논란 끝에 자살로 결론 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을 10여년 간 취재하고, 기획기사 '유병언 변사 1년여, 한국의 검시제도 개선되나'를 통애 법의학의 인식과 제도 개선에 기여한 점을 평가 받았다. 1회 수상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2회는 드라마 '싸인'에서 법의관 역할을 맡은 배우 박신양 씨가 받았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이윤성 대한의학회장과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비롯해 전국 법의학교실과 과학수사 연구분야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이 참석, 법의학 한 해 연구 성과를 결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