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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고] 이종욱 WHO사무총장 당선을 축하하며
시론 [기고] 이종욱 WHO사무총장 당선을 축하하며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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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혁 성균관대 이사장(전 보사부장관)

계미년 1월 28일은 참으로 반갑고도 감격적인 날이었다. 이종욱박사가 UN기구인 WHO의 수장으로 뽑힌 날이다. 이박사 개인은 말할것도 없고 대한민국과 전세계의 경사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WHO의 총수가 된것이니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WHO에 대하여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WHO 서태평양지역(Western Pacific Region) 사무처장에 한국인을 앉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WHO본부 사무총장에 앉게 하는 일이었다. 첫번째 꿈은 1988년에 실현됐다. 한상태 박사가 지역 사무처장으로 선출되어 한국인으로서는 UN전문기구의 최고위 선출직에 올랐던 것이다.

두번째 꿈이 현실화 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가 짐작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이꿈이 실현된 것이다. 두 개의 꿈은 한 박사와 이 박사 같은 훌륭한 인재가 있었기에 실현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이지만 정부나 관계 인사의 노력이 지극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상태 박사의 경우는 필자 자신이 보건행정 책임자였던 까닭에 다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이박사의 경우에는 김성호 복지부장관의 도움이 참으로 컸다. 김장관은 실로 대단한 일을 해냈다. 필자는 작년 11월 22일 결성된 이종욱박사 후원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별로 도움되는 일은 못했고 모든 것은 김장관이 직접 해결하였다.

그는 미얀마·중국·브라질·일본 등 WHO 집행이사국을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했고 투표기간 중에는 제네바에서 진두 지휘를 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이종욱 박사와 김성호 장관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뜻을 올린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UN준비위가 마련되었고 이 자리에서 자율성을 가진 국제보건기구 조직에 관한 중국과 브라질의 제의가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으며 1946년에 뉴욕에서 WHO헌장이 승인되었다. 이 헌장은 1948년 4월 7일 발효되었다. 그 이래 4월 7일은 '세계보건의 날'로 지정되어 매년 전 세계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WHO는 모든 사람들이 최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WHO헌장은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Health is a complete state of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HO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적인 보건사업에 대하여 지휘하고 조정하는 기능 ▲보건서비스의 강화를 위한 각국 정부의 요청에 대한 지원 ▲각국 정부의 요청시 적절한 기술지원과 응급상황 발생시 필요한 지원 제공 ▲전염병 및 기타 다른 질병들의 예방과 관리에 대한 업무 지원 ▲필요시 영양, 주택, 위생, 리크리에이션, 재정 또는 작업여건, 환경위생 등에 대하여 다른 전문기관과의 협력 지원 ▲생의학(biomedical)과 보건서비스에 관한 연구 지원 및 조정 ▲보건, 의학 및 관련 전문분야의 교육과 훈련의 기준개발과 지원 ▲생물학적, 제약학적, 그리고 유사물질에 대한 국제적 표준 설정과 진 단기법의 표준화 추진 ▲정신분야 활동 지원

WHO는 전세계 6개 지역에 사무처를 두고 있는 최대의 UN산하 전문기구이며 8,500여명의 직원과 2년간 22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1949년에 WHO에 가입하였으며 서태평양지역에 속하고 있다. 그간 세차례 본부 이사국으로 진출하였고 2001년 5월 제 54차 총회에서 이사국으로 선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임기는 2004년까지다. 우리나라가 UN회원국으로 되기 전에도 오랜기간 WHO가입국으로서 활동해 온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 UN이 우리들과는 먼 거리에 있던 시절에도 우리 나라는 WHO를 통해서 활동했던 것이다.

2002년 현재로 우리나라의 WHO 부담금은 4,171여만 달러이다. 전체예산중 0.99%에 해당되며 전회원국 중 17번째이고 서태평양 국가중에서는 일본, 호주에 이어 3번째이다.

정규 부담금 외에 우리나라는 자발적 부담금도 지원하고 있다. 2001년에는 말라리아 퇴치사업에 약 50만 달러, 금연사업에 20만 달러를 지원했고 2002년에는 북한 말라리아 퇴치사업에 약 68만 달러 상당의 의약품 및 장비 등을 지원하였다.

WHO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정규직원은 현재 3명 뿐이며 이중 1명이 본부에서 활약중인 이종욱 박사이고 2명은 서태평양지역 기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분담금등을 감안한 적정 인력규모는 8~15명이다.
 
한때 필자는 WHO와 비교적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1964년에 WHO파견으로 유럽과 동남아 여러나라를 시찰 방문했고 1970년대에는 13회에 걸쳐 WHO가 주최하는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서울의대 인구의학연구소장 자격으로 제네바에서 매년 개최되었던 인구의학연구소장회의의 고정 맴버로 참여하였고, 의대 학장, 보건대학원장회의에도 참석했다.

대부분의 회의가 제네바에서 열렸지만 때로는 다른 도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WHO에 드나들면서 총장이나 지역사무처장이 얼마나 영광된 자리인가를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WHO가 내세운 슬로건의 하나가 금연이다. 필자는 한때 중증 흡연자였다. 1970년대초 WHO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많은 참석자가 흡연자였다. 20명 전후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회의가 대부분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흡연자의 수가 줄더니 1970년대 중반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3명만 남았다.

이 사실이 필자의 금연 동기가 되었다. 금연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무조건 실행하는 방법이 최상책이다. 필자는 두차례 실패했지만 세차례 때는 성공했다. 이번 5월 총회에서는 담배규제 기본협약이 선포될 예정이다.

이박사와 나는 사제지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그를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이박사는 의대학생 시절부터 특이한 존재였다. 재학시절에 안양 나자로 마을에 다니면서 한센병 환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자원하여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일본인 여성을 만난 것도 이곳이다. 그 여성이 현재의 부인이다. 그의 봉사정신은 이미 학생시절부터 몸에 배 있었다고 믿는다.

이박사는 집념의 인물이다. 의대를 졸업한 후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MPH)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는 아메리칸 사모아의 열대의료원으로 가서 한센병환자 진료를 담당했다. 이 일련의 일들은 이박사가 단독으로 결정하고 실행한 것이며 그의 집념과 더불어 자립성과 창의성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다가 1983년에 그는 서태평양지역 한센병 관리팀장으로서 WHO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서태평양 여러 섬의 한센병환자에 대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지역사무처 전염병 관리국장직을 거쳐 제네바 본부로 진출했다. 그가 백신국장, 결핵관리국장, 사무총장 특별대표 등의 역할을 빛나게 수행한 사실에 관하여는 이미 많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소개되었기에 더 이상 기술하지 않겠다.

오는 5월 WHO총회에서 이박사는 인준을 받고 7월부터 총장 집무를 시작한다. 그의 총장 당선에서 우리들은 많은 뜻을 읽을 수 있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은 WHO의 기능을 수행하는 총수가 되고 인류사회의 최고 보건의료 지도자로 부상하는 것이다.

그의 총장 당선은 전세계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위상을 끌어 올리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이박사는 그의 존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존재를 빛내주고 있다. 물론 그의 앞에는 많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하게 모든 것을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 더 많은 한국보건인들이 WHO에 참여하는 과제도 해결해 줄 것이다.

필자는 지난 1월 28일 결선 투표가 끝난 후 제네바 현장에서 뛰던 김성호 장관으로부터 총장 당선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였다. 당선자와도 인사를 나누었고 장관과 함께 뛰던 신영수 교수(서울의대,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로부터도 소식을 들었다. 낭보의 연속이었다.

역대 사무총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초대총장이 단임(5년)으로 끝났을 뿐이고 그 이후의 총장들은 네번(20년), 세번(15년), 두번(10년)의 임기를 마치고 있다. 그런데 현 총장인 할렘 브른트란트(Harlem Brundtland)박사가 단임을 선언했던 관계로 급작스럽게 후임 인선에 접어 든 것이다. 3차에 걸쳐 14년간 노르웨이의 수상을 지낸 여장부인 현총장이 단임을 선언한 이유에 관하여는 아는 바가 없다.

이 기회를 포착한 이박사와 김장관은 참으로 대단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부의 최종결정을 이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듣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7차에 걸친 투표결과 이박사의 승리로 끝났다. 다시 한번 두분에게 축하와 경의를 보내며 직,간접으로 이 위업을 달성케 해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기회를 올바르게 잡을 때 빛나는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면서 이 총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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