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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49-1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랑하고 베풀었던 의사…
창간49-1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랑하고 베풀었던 의사…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3.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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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故 정미경 전진상의원 의사
대한의사협회 <의협신문>과 보령제약이 제정한 제32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인 정미경 선생님(전진상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께서 14일 오전 오랜 투병 끝에 57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의사로서의 삶 대부분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들이 행복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그들과 숨결을 같이했습니다.

2008년 암 발병 이후 지난한 재발과 전이 과정을 거치면서도 환자들의 곁을 지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당신 환자들과의 이별이 너무나 아쉬웠을 故 정미경 선생님의 영전 앞에 슬픔을 나눕니다. 선생님께서 별세하기 전인 11일 전진상의원으로 찾아뵙고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선생님의 삶을 옮겼습니다.
<편집자>

 

▲ 정미경 선생님에게 봉사는 사는 이유이며 소명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환자들을 위해 쓰면서 육신의 상처만큼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故 정미경 선생님의 빈소 모습. ⓒ의협신문 김선경기자

봄이 온 듯 했지만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었다. 11일 찾은 서울시 금천구 시흥 5동 주택가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전진상의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 봄볕이 간절했다.

18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키며 말기환자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던 정미경 전진상의원 의사(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몇 년 전 찾아온 암의 질곡과 싸우며 병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년 전 전진상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1974년 고 김수환 추기경과 국제가톨릭형제회의 뜻에 따라 세워진 전진상의원은 이름 그대로 온전한 자아봉헌(全)과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의 정신(常)을 오롯이 모아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최소한의 의료조차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 소망이 되고 빛이 됐다.

그는 전진상의원에 상주하며 빈민 가정 방문, 유치원·공부방 운영, 재가 노인 복지 활동, 가정 호스피스 활동,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운영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참 사랑의 의미를 전하고, 엄습하는 질병의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그 자신이 사랑과 인술의 도구가 되어 실낱같은 희망을 함께 갈구하며 곁을 지켰다.

수많은 환자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그 곳에서 그는 말을 잃고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병실에서 그는 작은 인형을 가슴에 안은 채 잠시 수면 중이었다.

지난 밤 얼마만큼의 고통이 그를 괴롭혔는지, 말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아픔이 그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암 투병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말기 환자들을 향한 손길을 더 이상 내밀 수 없는 아쉬움은 또 얼마인지 알 길 없었다.

그의 신은 왜 누구보다 다른 이의 슬픔과 아픔에 먼저 다가섰던 그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삶은 유한하다. 끝이 있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자신만의 삶을 소중하고 의미 있게 일구며 스스로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각자의 인생을 위해 경쟁을 이겨내고 유혹을 뿌리치며 엄격한 자기관리로 절제하며 성공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선다. 그러나 결국 한 개인의 삶이고 자신을 위한 성공이다.

정미경 선생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육남매 가운데 맏이로서의 삶이 그랬고, 의사의 소명을 받은 후 걸었던 인술의 길 또한 그렇다.

그의 입을 통해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오랜 시간 그 뜻을 이어간 연유를 찾고 싶었으나 말씀을 나눌 수 없었다. 지난해 5월 <의협신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생명 윤리를 공부하면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줄이 있습니다. '의사는 본래가 봉사직'이라는 구절이었죠. 내가 지금 택한 길은 근본적으로 봉사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었고, 또 많은 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이 한 줄을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학생 때부터 생명윤리와 의학윤리를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봤어요."

그에게 봉사는 사는 이유이고 소명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환자들을 위해 쓰면서도 환자를 만날 때면 육신의 상처만큼 아픈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진심을 담은 위로는 어떤 이에게는 생명으로, 어떤 이에게는 소망으로,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졌다.

3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내원했던 30대 간암 환자는 그와 전진상 식구들의 보살핌 속에 2년여를 함께 했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귀하게 전해졌던 사랑 나눔은 '행복한 마무리'를 고마워하는 유족들의 마음에 새겨졌다.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에는 열정도 뒤따랐다. 호스피스 활동을 위해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했던 그는 호주 플린더스대학에서 Graduate Certificate in Palliative Care 과정을 마쳤다.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 속 울림이 그를 이끌었다.

암 투병 중에도 말기환자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그 역시 아픔이 밀려들었지만 의사가 불안해하면 환자가 더 힘들어 할 것을 걱정하며 옅어지는 삶의 기운을 북돋워갔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도 환자를 향한 그의 몸짓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는 전진상의원을 사랑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와 사회복지를 결합시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에 동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질병으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그 구성원들이 다시 소외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아픈 현실을 막기 위해 나섰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건강'과 '교육'이었다. 의료를 비롯 양육비·생계비·장학금 지원 등 한층 넓은 차원의 의료복지가 펼쳐지는 데 정성을 쏟았다.

유치원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환자 가족의 자녀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해 가족 해체를 막으며, 직접 의원 밖으로 발걸음을 옮겨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다가섰다. 그는 의료와 복지가 함께 이뤄지는 이상을 향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해 그는 아직은 항암제에 반응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운 좋게 의사가 되면서 어려운 분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서울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인가요. 하하…."

이제 그의 허허로운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 따뜻한 손길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아쉽고 그립다. 그러나 그가 옮겼던 한 걸음, 한 걸음은 이제 길이 되고, 그 길을 좇아 누군가가 또 걸어갈 것이다.

그는 혹시 하늘이 세상에 내려 보낸 전령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름 없는 의사였다. 그 많은 시간을 '언제나 참다운 사랑으로 헌신'하며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 '전진상'은 그의 이름이었고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의 이름을 가슴에 새긴다.

의사 정미경.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사랑하고 베풀며 나눴던 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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