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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신간]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5.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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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사태 인터뷰 기획팀·지승호 지음/시대의창 펴냄/1만 6800원

 
2015년 5월 20일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첫 환자가 국내에서 발생했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2차, 3차 감염자가 속속 나타났고 대한민국 전역은 극도의 불안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다. 확진자 186명 가운데 사망자가 38명 발생했고 격리 해제자는 1만 6752명에 달했다.

지난한 시간동안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전문가들도 메르스 바이러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민은 불안에 떨며 서로를 의심하면서 타인을 낙인찍기도 했다.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공공의료 수준의 밑바닥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양한 의료 현장에서 메르스를 온 몸으로 겪어낸 의료인들의 외면할 수 없는 고백을 담은 인터뷰 모음집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가 출간됐다.

이 책은 당시 사태 한가운데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린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의료인들의 증언과 고백을 담았다. 도대체 "왜 메르스 감염병은 사태가 되었는지" "무엇이 바뀌어야만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의료인 10명이 '메르스 사태 인터뷰 기획팀'을 꾸려,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와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메르스 사태 최전방인 응급실의 의료진과 개인 병원·종합병원·공공병원 등의 의료진을 모았다. 그들의 입을 통해 의료 시스템의 실상을 전하고, 한국 공공의료의 취약성과 의료 시스템 전반의 부실을 고백하고 반성하며 성찰한다.

이 책에 수록한 여덟 편의 인터뷰 주제는 크게 넷이다. 먼저 가장 근본적인 의문인 초기 방역 대응 과정을 살핀다. 흔히들 메르스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된 경우가 많다. 또 각자의 입장이나 역할에 따라 내용을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각기 다른 입장의 의료인들의 입을 통해 진실의 파편을 조금 더 세밀하게 맞춰나간다.

두 번째 주제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면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태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전달한다. 메르스와 관련한 의료진이 누구인지 물으면, 감염병 전문의만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메르스 현장, 그 최전방은 바로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이 포진한 응급실이다. 응급실 의료진은 감염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과 거의 무방비 상태로 만나야 했다. 정체도 모르고 지침도 없는 실체와 어쩌면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가치, 바로 생명의 고귀함을 상기시킨다.

세 번째 주제는 보건당국·지방자치단체·의료기관이 어떻게 협력하고 대응했는지를 살폈다. 메르스 사태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사실 어떻게 작용하지 않는지를 보여줬다는 것이 더욱 옳다. 인터뷰한 의료인들조차 놀란 공공의료의 현실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마지막 주제는 인권과 의료인 감염이다. 특히 인권과 의료인 감염 문제는 메르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언론에서도 거론한 적이 없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메르스 확진 환자는 물론 의심 환자도 격리돼야 했다. 그러나 사람을 격리하는 사안을 놓고 우리 사회는 그들의 '인권'에 대해 침묵했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격리 조치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인권 침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시의 그 조치가 합당했는지를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책은 이같은 문제에 대해 의학적·과학적인 이의를 제기한다. 또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감염의 공포와 외롭게 싸워야 했던 의료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감염을 막아야 할 의료인이 감염되는 문제는 바로 의료 시스템의 존립과 직결한다. 이 책은 의료인이 감내했던 사투의 흔적을 좇아간다.

메르스가 지나간 후 1년. 지금은 어떨까. 대부분의 의료 현장에서는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의 인터뷰어들은 "공공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데에도 계산기를 두들겨야 하는 우리 사회에, 다만 마지막 경고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과 변화의 싹이 트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이 책을 펴낸다"고 밝혔다.

기모란·김홍빈·나백주·박주옥·서주현·송명제·이근화·이외원·임승관·정명관·정종탁·조승연·최원석·최은경·최은영·최홍조·황승식 등이 인터뷰이로 참여해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 갔다.

인터뷰를 엮은 인터뷰어로는 지승호 작가와 함께 '메르스사태 인터뷰 기획팀' 소속으로 강동진(치과의사)·김대희(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김명희(예방의학 전문의)·김선아(약사)·김종명(가정의학과 전문의)·박형근(제주의전원 의료관리학교실)·임대성(응급의학과 전문의)·임석영(가정의학과 전문의)·조성식(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최윤정(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이 함께 했다(☎ 02-335-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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