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올해 방송가와 SNS를 점령한 트렌드 중 하나로 '아재'가 있다. 아저씨의 낮춤말이라는 '아재'는 어느 순간 장년 및 중년 남성 모두를 지칭할 수 있는 '핫한 대명사'의 대명사가 됐다.
일상 언어 생활에 쓰이는 아재는 상반되는 두 가지 어감이 있는데, 젊은이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올드하고 진부한 남성이라는 느낌과, 부르기 편하고 크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일면 친숙한 남성이라는 의미가 공존한다.
먼저 청년이나 오빠의 반의어 개념으로 쓰이는 아재.
세련되지 못하고 남의 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농경사회적, 가부장적 행동이 익숙한 남성을 지칭한다. 오래 전 들었던, 어느 기발한 기상 캐스터의 날씨 만담에서 이런 아재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여름이 왔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택시기사 아저씨가 바지를 걷어 올리기 시작하면 여름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경우에 쓰이는 아재 호칭은 처음에는 세대 차이나 권위주의에 대한 풍자로 생겨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옛날에 태어난, 구세대 남성의 개념으로 의미가 전환됐다.
최근에는 <아재력 테스트>라는 자가(自家) 체크형 질문지도 돌고 있는데, 말이 그려진 JORDACHE 상표, 93년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신호등 알사탕 등 이삼십 년 전의 소품들을 많이 알면 알수록 아재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이 테스트에 의하면 아재냐 아니냐는 본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삶의 길이에 비례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주변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남성을 의미하는 아재.
나이 든 남성이지만 왠지 무섭지 않고 소통을 위해 나름 애를 쓰는, 스스로 망가질 줄 아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유행까지 불러오게 된 것이 바로 <아재 개그>이다.
임금님이 사회인 야구를 하는데 같이 하던 신하가 공을 던지며 하는 말, '송구하옵니다'.
임금님이 집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 '궁시렁 궁시렁'.
이런 식의 아재 개그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아재 개그도 일반 개그와 마찬가지로 구연 능력과 주변 상황에 따라 폭소를 터뜨리게 하기도 하고 하고 냉소나 야유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재 개그의 핵심은 바로 냉소나 야유에 있다. 부하직원이나 나이 어린 청중이 개그를 시도한 아재에게 면전에서 재미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아재 개그는 이미 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한때 유행했던 부장님 유머와 아재 개그의 본질은 동일하다.
다만, 개그가 펼쳐지는 상황과 리액션에 따라 비판 의견 없이 무조건 웃어야 한다면 부장님 유머, 썰렁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면 아재 개그로 구분되게 된다. 쌍방향 소통을 위한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때문에 개그맨도 아닌 아재들이 유머를 검색하고 암기하고 수시로 시도하는 것은, 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준비와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봐주어야 한다. 청중으로서 그 노력을 빛내 주는 방법은 재미있을 때 빵빵 터져 주는 것과 함께 재미없을 때 냉정하고 진심어린 피드백을 해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누군가 아재 개그를 시도했을 때 청중 가운데 하나가 (비록 아재가 아니라도) 비슷한 시리즈의 아재 개그로 맞받아쳐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케미컬이 형성될 수 있다. 왕십리의 곱창 골목이나 대구의 똥집 골목, 광주의 오리탕 골목이 유명하고 맛있는 이유는 동일 업종이 모여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다.
한 명이 시작하고 뒤이어 여기 저기서 아재 개그가 경쟁적으로 터져 나오는 조직은 조만간 (혹은 언젠가는) 괄목할만한 성과가 날 조직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항간의 아재력 테스트에는 빠져 있지만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도 아재 검증의 한 문제로 낼 수 있겠다 싶다. 정답자에게 이어지는 퀴즈는 '주연배우 강수연에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긴 불교 영화는 무엇일까'이다. 정답은 본 컬럼 제목과 비슷하며, 원작자는 맨부커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의 부친 소설가 한승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