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목표·내용 잘못 설계...모성사망률 증가·심근경색 치료병원 붕괴
대한임상보험의학회 심포지엄..."적정성 평가제도 틀 다시 짜자" 제안
12일 중앙대병원에서 열린 제15차 대한임상보험의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한 임상보험 전문가들은 현행 의료질평가를 비롯한 요양급여 적정성평가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취약한 의료 분야와 지역의료 안전망이 붕괴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석일 가톨릭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요양급여 적정성평가 발전 방향' 주제 심포지엄을 통해 "급성심근경색(AMI) 환자의 경우 먼 곳에 있는 우수한 병원이 아니라 신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가까운 병원에 가야하는 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질 평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의료질 평가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오동진 대한내과학회 보험이사는 "AMI 환자의 경우 절반은 병원에 오기 전에 사망한다"며 "적정성평가는 병원에 오기 전 발병 단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예방이나 운동 등 전체 과정을 평가해야 함에도 병원 도착 이후의 절반만 평가하다보니 반쪽짜리 부실한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당뇨환자가 운동을 하면 혈관질환이 없는 환자와 사망률이 같다는 의학적 근거가 확립돼 있음에도 건강보험에서는 운동치료나 예방 활동에 대해 인정하지 않은 채 엉뚱하게 약 값에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고 언급한 오 보험이사는 "적정성평가의 지평을 예방과 관리 영역까지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보험이사는 "심사와 평가는 패러다임이 다르다"면서 "임상보험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올바른 평가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실질적인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지표를 만들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공급자 주도형 지표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며 "의료 질 평가에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지표의 도입 목적과 설정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공급자 참여에 무게를 실었다.
의료의 질보다 국민의 안전망을 지킬 수 있도록 지역거점·취약지 병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적정성평가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현선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신경과)는 "국민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질·편의성·지속 가능성"이라며 "지역병원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거점병원부터 지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학회 임원들도 취약의료의 붕괴 문제를 우려하며 의료 질 평가 지원금과 적정성 평가 가감지급 재정을 투입할 수 있는 평가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근영 임상보험의학회 이사장은 "저출산으로 분만이 100만건에서 42만건으로 줄어들었지만 열악한 분만 환경을 지원하는 대책이 없다보니 분만병원들이 분만실을 축소하거나 폐쇄하고 있다"며 "고위험수가 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최근 수년째 높은 모성사망률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초산연령은 2004년 28.83세에서 2014년 30.97세로 높아졌다. 35세 이상 산모의 비율도 2004년 9.4%에서 2014년 21.6%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
산모의 고령화와 고위험임신으로 인해 저체중아·조산아의 출산율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3년 4.1%였던 저체중 신생아 비율은 2013년 5.5%까지 증가했며, 같은 기간 조산율은 4.5%에서 6.5%로 높아졌다.
분만 과정에서 숨지는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 명당 아이를 낳다 숨지는 산모의 수)는 2012년 9.9명에서 2013년 11.5명으로 15.6%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7명)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40세 이상 산모의 모성사망비는 53.2명(20대 후반 9.4명)으로 월등히 높다.
이영구 임상보험의학회 총무이사는 "선택진료제도를 의료질평가 지원금 제도로 개선한 이후 수술 의사에 대한 지원책이 사라지고, 외과계열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며면서 "외과의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전공의들이 지원하지 않는 기피 현상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평가 과정에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제도를 만들 기회가 없었다"면서 임상보험 전문가들의 참여와 협력에 방점을 찍은 뒤 "평가와 함께 지원·교육·환자 태도 등을 패키지로 함께 바꿔야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정성평가 미래발전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김계숙 심평원 상근평가위원은 "파트너십을 통해 평가조직을 개편하고, 기능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함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는 "한국의료체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또 다른 형태의 전달체계를 품을 수 있는 건강보험 체계의 변화와 더불어 임상의사의 주도권이 더 많아져야 평가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근영 이사장은 "행위 하나 하나에 급여를 주는 행위별 급여체계에서 전체 적정성평가에 재정을 지급하는 획기적 형태로 전환하는 시점"이라며 "선시행 후보완을 내세우면서도 보완을 하지 않는 과거의 행태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협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