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한곳에서 개원한 지 30년이 됐다. 내가 세 든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인데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나는 3층에 세 들어 있다. 지하에는 사진관, 1층에는 분식집과 롯데리아가 있고 2층에는 커피숍, 3층에는 병원과 다른 사무실이 있다.
30년 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은 나밖에 없다. 다른 점포들은 주인이 10번 이상 바뀐 곳도 있다. 장사가 안 되서 나간 경우도 있고 건물주가 쫓아낸 경우도 있다. 이 건물에도 산부인과와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계셨는데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분은 은퇴하셨다.
건물 주인도 세상을 떠나셨고 처음 개원할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건물을 관리한다. 귀엽던 아들이 이제 주인이 되어서 집세를 올리고 관리비도 징수한다. 30년 동안 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한 직장에 다녔다고 할 수 있다. 진급도 없이 자리이동도 없이 인생의 중요한 시간 모두를 한 곳에서 보냈다
개원할 당시 부평역 근처에는 큰 건물이 없었다. 내가 세 든 건물과 바로 옆 5층 건물이 가장 크고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부평역사도 시골역사처럼 작았고 경인고속도로도 2차선이었다.
30년 전에는 가장 번화가인 이 곳에는 신호등이 없을 정도로 한가했고 옆 건물에 세 든 사람들과 내가 세 든 건물의 사람들과 저녁내기 축구시합을 할 정도로 정이 있고 살만한 시절이었다.
밤에는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과일을 파는 사람들과 헌 책을 파는 사람, 야바위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가게마다 극장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마담과 아가씨들이 있는 옛날 다방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옛날 다방이 있던 자리에는 스타벅스가 들어서 있다. 벽면에 페인트로 쓴 쌍화차·생강차·오미지차 대신 낯선 커피 이름이 걸려 있다. 미소를 지으며 차 주문을 받던-지방에서 올라온 예쁜 레지 아가씨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
동생학비 때문에, 어머니 약값 때문에 올라온 그들은 이제 고향에 내려가 있을까? 극장이 있던 자리는 CGV가 들어서 있다.
지금의 커피점이나 영화관보다 다방이나 극장이 편했다. 옛날 다방에 젊은 학생들이 들어오지 못했듯이 요즘 커피숍에는 나이든 사람들은 주인이나 젊은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앉아 있어야 한다.
개원 초기에는 근처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았고, 나이든 환자들에게도 '의사가 젊어서 좋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쉰을 넘긴 환자를 볼 때면 나보다 한 참 나이든 분이라 생각했다.
선배 의사들은 모두 은퇴하셨고 나이 드신 환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지금은 쉰 정도 된 환자들은 한참 젊어 보인다. 이제 주위 개원의들 중에 나보다 나이든 의사는 별로 없다.
초기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젊은 환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과거에 단골인 환자들이 나이든 이유도 있지만 젊은 환자들이 초진으로 찾아와도 단골로 자리잡지 못한다. 특히 젊은 여자환자가 그렇다. 어딘가 불편한 모양이다.
개원 초기에는 노인 환자들에게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얘기, 어릴 때 호랑이를 본 얘기 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그 분들도 안 계신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30년이 졸졸졸 조금씩 흘러갔다. 30년 전에 산 의자가 지금도 있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라 당시 최고급으로 3개월의 월세에 해당하는 60만원을 주고 산 이태리제 의자다. 당시 60만원이면 지금 40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15년은 내가 앉았다가 지금은 환자들이 앉는다. 그 의자도 이제는 나처럼 퇴행성관절염을 앓고 있는지 삐걱거리고 피부염이 있는지 가죽이 여기저기 트였지만 겉보기에는 지금도 우아하다. 잃어버린 뼈대 있는 전설을 유지하려는 우아함이다. 나도 의자처럼 연식이 오래됐지만 우아하게 늙고 싶다.
오랜만에 오는 환자들은 '원장님도 이젠 늙으셨네. 그 좋던 얼굴이 사라지셨네'한다.
얼굴만 변한 것이 아니다. 쉬 피곤하다. 혈당도 정상소견이 아니고 발기도 과거 같지 않다. 개원 초기 철인경기나 테니스를 열심히 할 때는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의 선배의사들이 주말에는 집에서 충분히 쉬지 않으면 환자를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해되지 않았다. 주말에 운동을 하는 재미로 환자를 보는 나로서는 불쌍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30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없던 핸드폰이 생겼고 고속철도 생겼다.
신호등 없던 거리는 여기저기 신호등이 설치돼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며 높이 올라간 건물들은 멀리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있다.
한가했던 도로들은 넘치는 자동차들과 뿜어진 매연들, 경적소리로 소란해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진료한다. 창살 없는 감옥처럼.
옆 건물에 누가 세 들어 사는지 모른다.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다.
시간은 만물을 늙게 만들고 병들게 하고 추하게 파괴해 버려 우리를 슬프게 하고 옛것들을 파괴해 버려 또 슬프게 한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온다. 오는 세대에게 의자를 물려주고 변하지 않은 숲으로 가야겠다. 그 곳에서 늙은 얼굴을 감추고 안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