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환자와의 공감

청진기 환자와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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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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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 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이른 새벽 눈을 뜬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편두통이 또 시작이군. 어제 저녁 약간 아팠던 것을 무시하고 그냥 잤더니 영락없다. 두통은 새벽을 가르며 나의 머리를 짓이긴다. 공복에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제일 싫다. 우유라도 마신 뒤 폰탈과 크래밍을 급히 먹는다. 아니나 다를까. 뒤따라오는 오심 구토. 방금 먹은 약도 함께 나온다. 약을 토했으니 다시 먹어야 할까. 혼미한 정신 속에서 내 상태를 가늠하려 애쓴다. 한번 두통이 시작되면 가라앉을 때까지 약을 계속 먹어야만 좋아진다. 제발 그냥 지나가기를.

본격적인 편두통은 5년 전 나를 찾아왔다. 처음 발병했을 때 하루 24시간 한 달 내내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진통제는 한 번 복용하면 4시간을 채 가지 못했다. 내과 의사인 나에게 밀고 들어온 두통이라니. 당혹스러웠다. 대학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혹시 모를 원인 검사를 위해 시행한 뇌 CT는 정상이었다.

신경과 교수님은 편두통 예방을 위해 토피라메이트를 권하셨다. 부작용이 심했다. 수마트립탄도 듣지 않았다. 다시 신경과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내게 효과가 있는 폰탈과 크래밍만 복용하는 날이 계속됐다.

두통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지 않나 싶어 치과를 찾았다. 검진결과 악관절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고 있다며 취침시에 착용하라고 치아 교정기를 만들어주었다. 하루 종일 진료하고 컴퓨터를 많이 쓰니 어깨와 등 근육의 긴장으로 두통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통증의학과도 찾았다. 어깨 스트레칭과 치아 교정기 덕분에 두통이 약간 준 것 같았다.

편두통과 싸우며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처음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약기운이 없으면 머리가 아팠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잠드는 것이 겁났다. 새벽에 눈뜨기도 두려웠다. 약은 싫지만 먹지 않으면 오심 구토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편두통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논문도 뒤적여보고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나의 결정 하에 내가 자신을 치료하는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편두통 주치의 입장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던 중 절친 신경과 선생님 소개로 두통 연구에 올인하고 계시다는 신경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산만한 진료실 분위기, 소탈한 웃음의 교수님은 언뜻 보기에도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5년간의 나의 편두통 전투사(戰鬪史)(?)를 조용히 들으시더니, "많이 힘드셨죠? 조금만 참으세요. 곧 좋아질 겁니다. 나도 두통을 달고 살아요. 그 고얀 놈은 지극히 주관적인데다 체면도 없어요. 이놈을 내몰기 위해 쓰는 약도 환자들의 반응이 가지각색이에요. 다른 약은 써보셨다니 우선 씨베리움으로 갑시다." 농(弄) 섞은 부드러운 어조가 깊은 신뢰감을 느끼게 했다. 진료실 문턱만 들어서도 아픈 머리가 시원해진다는 내 환자의 고백에 공감이 갔다. '이 무슨 조화지? 조금 전까지도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는데…. 아하! 이놈을 친구로 받아들이자.' 자신도 모르게 여유가 생겼다.

당뇨병 고혈압이 있어도 죽어라 약을 안 먹고 싸우다 내원하는 환자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싸우지 말고 친구로 받아들여 동행하라고. 나 스스로도 하루에 몇 번 씩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찾아오는 모든 통증에 겸손해졌다. "선생님 배가 아픈데 왜 머리도 아프죠? 등은 또 왜 아파요?" 이런 황당한 질문에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어쩌죠? 검사결과는 모두 정상인데 환자분은 많이 아프시네요. 곧 괜찮아질 겁니다. 마음 편히 가지고 친구로 받아들이세요" 의사의 공감만으로도 환자는 벌써 나은 표정이다. 치유(治癒)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환자와의 공감이 질병치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나 자신이 편두통과 친해지면서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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