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치매학회, 서울시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 시범사업' 재고 주장
한의학 치료법 명확하지 않고 단순 선별검사로 대상자 선정 문제 지적
대한치매학회는 서울특별시가 진행하려는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 시범사업'(무료 치매 상담)이 오히려 치매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사업을 재고해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고, 단순 선별검사만으로 치매환자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앞서 대한의사협회와 서울특별시의사회,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대한노인정신의학회 등도 잇따라 성명을 내어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대한치매학회는 지난 8일 서울시에서 '어르신 무료 치매 상담 받으세요-서울시,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사업 실시'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학회는 지난 2007년부터 서울시가 진행해 온 치매사업에 적극 동참했고, 서울시 어르신을 위한 치매, 신경퇴행질환, 우울증 예방 등 노인건강사업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지만 이번에 제시한 사업의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과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이번 사업의 대상자 선정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는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또는 노인우울척도(GDS)같은 단순한 선별검사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며 "치매는 수많은 원인 질환에 의해 발생하므로 그 원인이 밝혀져야 적절한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비록 선별인지 기능 검사에서 인지 기능 저하가 의심이 되더라도 환자의 병력과 뇌영상, 정밀신경심리검사 등의 추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치매 혹은 경도인지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에 대해서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회는 "치료를 전제로 한 치매 진단은 치매환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심리적 충격, 약물 오남용 위험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단순 선별검사만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치료가 포함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발상은 치매 전문가라면 추진하기 힘든 위험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는 마치 혈액검사에서 간수치가 비정상일 경우 간암으로 진단해버리고 이에 대한 추가 정밀검사 없이 암 치료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충고했다.
학회는 "수년 동안 지역 사회에서 치매검진사업을 진행해 온 경험에 의하면 간이정신상태검사(MMSE)가 비정상이었던 사람 중에서 치매로 진단받는 경우는 1/3 이하였다"며 "이번 사업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자 선정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시민건강을 위한 좋은 취지의 사업 목적이 왜곡될 수 있고, 사업결과가 낳을 파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이번 사업에 쓰이는 치료 방식의 안전성에 대한 조치가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이번 사업과 같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가 포함될 경우 모든 치료는 엄격한 기준 하에 관리돼야 하고, 이를 통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큰 치료 시도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일부의 이익을 위해서 결과가 왜곡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업에 쓰인다고 홍보되고 있는 총명침, 과립 한약 등은 비록 경험적으로 한의학에서 쓰여 온 치료법이라 하더라도 대상자들에게 약물의 구체적인 성분과 침술 방식이 명확하게 공지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치료 후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런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 사업진행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대한치매학회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심리학 전공자, 사회사업가, 작업치료사 등 치매와 연관된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학회이며, 치매라는 사회적 질병을 극복하고 치매환자와 가족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그 고통과 부담을 헤아리고 분담하기 위해 적극적인 학술활동과 사회활동을 진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