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영 동아의대 교수(동아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전 대한유전분자진단학회장)
지난 주 토요일은 대한진단검사의학회와 대한유전분자진단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1회 임상 차세대 염기서열 워크숍의 마지막 날이었다. 12주간 격주 토요일에 진행됐던 워크숍의 모든 과정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이용해 임상 유전체 진단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생물정보학, 검사과정 및 해석, 그리고 판독과 나아가 유전상담까지를 포함해 해당 분야의 경험 있는 전문가들이 강의를 맡아주어, 향후 진단검사에 도입하고자 하는 회원들에게 아주 유용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우리 병원 진단 검사실에 유전체 분석용 장비를 도입하고 검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단계를 다시금 살펴봤다. 외부적으로는 유전체 분석용 의료장비 및 시약의 허가 문제, 진단검사 항목의 신의료기술 신청 여부, 또한 우리 병원은 의료기관이므로 유전체 검사를 하기 위해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적용 등 관련 규제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된 사항도 지켜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환자로부터 받아야 할 동의서에 포함될 내용과 동의서 양식을 수정·보완해야 하며, 어느 검사의 조합이 환자진료에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하는지를 위원회 혹은 관련부서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검사의뢰와 보고 또 필요하면 유전상담 과정에 참여할 담당자도 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전체 검사는 의료 행위이고 진단검사 과정이므로 검사실 질 관리 및 안전에 관한 각종 검사실과 의료기관 인증프로그램의 인증조사에 대비해 앞에서 언급한 전 과정을 포함해 각 검사의 정확도·민감도·재현성·특이도·임상 유효성·내외부정도관리 평가를 시행하고 증명하는 자료를 준비해서 조사 시에 제출해야 한다.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진단검사의학 관련 전문의 혹은 일선의 검사 담당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단계 하나 빠트릴 수 없음을 숙지해 어렵고 힘들지만 사명감을 갖고, 신규검사의 도입 시 시작부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며칠 전 언론에 발표된 "일반인들도 개개인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알게 되어 비만·암·고혈압·당뇨병 등의 질병위험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는 보도는 지금까지 학회·의료기관·관련단체들이 직간접으로 공들여 이뤄왔던 선진국 수준의 진단검사 업무와는 완전히 거꾸로가려 하는 제도가 아닐 수 없다. 비의료기관이 의료기관의 의뢰를 받지 않고 환자 및 건강인을 대상으로 직접 유전체 검사를 시행해 상업적 목적으로 영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게함과 다르지 않다.
확실한 의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유전체 예측검사 시행은 보건의료 체제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고 향후 무분별한 오남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이미 몇몇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밝혀져 있다.
굳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정밀의학 계획'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유전체 분석을 통해 자료를 얻는 의료 행위는 의료의 다방면에 영향을 주어 기존의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현재로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빨리빨리'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고, 정말 시작은 반 인듯 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브렉시트 결정 후에 많은 영국 국민이 왜 언론 등에서 브렉시트의 폐해에 대해서는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한다. 빠른 결정이 필요한 때도 많지만 성급한 결정이 시작하지 않음보다 못한 때도 있다. 특히 국민건강과 연관된 사안은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지금이라도 다방면의 전문가들과 함께 협의한 후 시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