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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휴가

청진기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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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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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문을 열면 뜨거운 공기가 전철역의 손님처럼 들이닥친다. 앞으로 2개월은 문을 닫고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야만 한다. 겨울에도 약 5개월 문을 닫고 지냈다. 모두 휴가를 떠났는지 환자는 없다.

한가한 시간에 프랑스 영화 '마르셀의 여름'을 다시 보았다. 프랑스의 국민작가인 마르셀 파뇰이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990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프로방스로 여름휴가를 떠나 100 여 년 전의 프랑스 시골풍경을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보여주는 영화다. 말이 끄는 마차, 호롱불, 오염되지 않은 자연,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등장한다.

마르셀은 프로방스에서 친구를 사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10끼를 먹지 않는다." 욕심 없이 자연과 함께 사는 시골 친구의 말과 그의 삶을 부러워하는 마르셀은 도시로 돌아가는 날 프로방스에 남기 위해서 산속으로 숨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마르세이유로 첫 출근한 날 학생들에게 말한다.

"오늘은 1900년 10월 1일이다. 지금 시대는 가스와 전기와 전화가 발명돼 우리 생활이 밝아졌다. 앞으로의 시대는 문명이 발달해 우리가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고 평등한 민주주의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1900년 당시 마르셀 파뇰은 5살이었다.

마르셀 파뇰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분주해지고 메말라지는 세상을 보면서 어렸을 적에 프로방스에서 보냈던 여름휴가를 그리워하며 글을 썼다. 아버지가 말한 문명과 편리함은 도래했지만 평등함이나 쉼이 없는 시대는 오지 않았다. 100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옛것이 바로 헌것이 되어버리고 변하지 않으면 국가나 개인이 바로 종속된다는 과거의 경험이 우리를 끊임없이 재촉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100 여 년 전 초등학생인 주인공이 프로방스에서 느꼈던 여유-1950년대 초등학생인 내가 삼각산 깊은 숲속에서 느꼈던 한가함은 도시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어김없이 더운 여름과 함께 휴가철이 왔고 사람들의 마음은 도시를 떠나고자하는 본능으로 분주하다. 여름휴가는 달리는 열차에서 내려서 쉬는 멈춤이 있는 간이역과 같다.

요즘처럼 없는 환자를 기다리는 초조함이 없어서 좋고, 퇴근 할 때 없는 수입에 허탈한 마음이 없어 좋고, 모든 만물이 잠든 고요한 밤에 보고 싶은 책 마음껏 보고 늦잠을 자도 아무 근심이 없어 좋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의과대학생 시절과 수련과정, 군생활의 긴 준비기간과 없는 돈에 빚을 내서 개원이라고 해서 수입과 세금과 보험청구등 여러 걱정과 폐쇄된 진료실에서 하루하루의 변화 없는 삶에 지쳐 버렸고 자신의 존재와 꿈을 잊고 또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생존에의 의지와 의사로서 부여된 책임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정력에의 소비를 가중시키고 은퇴 없는 직업은 은근히 무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도시는 텅 빈 느낌이고 출퇴근 거리는 뻥 뚫렸다. 움직이는 것들(차·사람)은 없고 정지된 것들(도로·집·가로수)만이 가득한 요즘 도시 풍경이다. 차와 사람들이 떠난 비오는 도시의 밤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유령이 사는 곳 같다.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어 놓고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한다. 기와집과 양철지붕·초가집이 사라지고 빌딩만이 존재한다. 곡선은 사라지고 직선만이 존재한다.

도시에는 속도에 걸림돌이 되는 골목길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편리함과 속도와 경쟁과 소란함과 욕망만이 존재한다.

100년 동안 어떤 커다란 흐름(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세상을 점점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사람들은 쉼을 위해 떠난 휴가에서 소란함과 채우지 못한 허전함을 갖고 생존을 위해 다시 도시로 모여들 것이고 시멘트와 아스팔트의 삭막함은 움직이는 것들과 네온의 불빛으로 가려질 것이다.

신호등은 또 우리에게 명령하며 간섭할 것이고 사람들은 분주히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할 것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소들에게는 채찍이 기다리고 신음하며 또 걷는다. 힘든 현실을 잊고자 일에 몰두할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목마를 것이다.

곡선이 사라진 도시, 여유가 없는 도시, 흙이 없는 도시의 여름밤은 열대야로 뜨겁기만 하다. 인간의 존엄함은 예리한 직선에 잘려 존재하지 않는 도시.

TV에는 어느 검사장과 민정 수석의 욕망이 부른 부정과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의 성추문과 테러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상은 점점 메마르고 사랑이 없어질 것이다.

2000년 전 성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말세에 너희들이 사랑을 보겠느냐?"
창 밖에는 고장 난 신호등은 깜빡거림을 계속하고 있고 그 옆으로 방울 달린 멍에를 멘 소가 무거운 걸음을 걷고 있는 환상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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