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았을 때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깨달았을 때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7.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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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랑하는 에티오피아 > 전시회 연
홍건 전문의(에티오피아 명성기독병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사도 바울의 고백을 가슴에 새긴 고희의 노의사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서기 위해 진료실에 들며, 강단에 서고, 붓을 잡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절대자의 뜻을 좇아 행동하고 실천한다.

누구나가 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에 몸을 맡긴다. 1997년 페루 아마존강 유역에서 시작된 의료봉사는 멕시코·베네수엘라·칠레·태국·몽골·케냐·세네갈·카메룬·이집트·아이티·북한 등 20여개국을 거쳤고, 2013년 은퇴 후 에티오피아에서는 3년째 머무르고 있다.

홍건 영상의학과 전문의(에티오피아 명성기독병원).

그가 오랜시간 끊이지 않고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온 열정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 그 물음은 곧 행동의 원천이 되고 사랑의 실천이 됐다. 의료 오지를 다니면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치유자가 됐고, 그가 믿는 신에 대한 전달자가 됐다. 그리고 그의 삶과 여정은 유려한 화폭에 그대로 옮겨졌다.

<나의 사랑하는 에티오피아> 전시회를 위해 내한한 그를 통해 삶과 봉사·그림 이야기를 듣는다.

 

 

1970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해군 대위로 마친 뒤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영상의학과·핵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34년간 시카고 근교 병원에서 봉직생활을 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사들이 차출되면서 외국 의사들로 진료 공백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인턴 1년과 방사선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핵의학 분야를 2년 더 공부했습니다. 귀국해서도 몸담을 만한 매혹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미국에 남기로 결정했고 시카고 근교 병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병원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고 아내와 함께 종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이게 다는 아닌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신앙을 갖게 되고 병원이 자리잡게 되면서 생활 방편을 위한 의사로서의 삶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배 의사 가운데 의료선교 활동을 하는 분과 함께 의료봉사에 나서게 되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사가 된 이유를 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휴가중에 이뤄지는 단기 봉사였지만 그 짧은 기간에 얻는 행복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아내와 혹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전해지는 기쁨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신의 섭리를 찾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의료봉사는 삶의 이유가 됐다. 그의 발길은 20여개 나라를 거쳤고 북한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출신 기독의사들이 북한의 나진·선봉에 병원을 지어줬습니다. 이 덕에 일년에 여섯 번 정도 의사를 파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병원에 CT를 설치했는데, 평양을 제외하고 북한 전역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전언에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영상자료를 판독할 수 있는 의사도 없어서 방문할 때마다 현지 의사를 수련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10년전 일이니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을지…."

봉사활동 중에 잠시 짬이 나면 화필을 잡는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현장 분위기를 크로키로 옮깁니다. 사람들의 애환이 스며든 생생한 기록입니다. 때때로 그림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도 합니다. 봉사현장 그림을 제약사 등 후원자에게 보내주면 고마워합니다. 사진은 많이 받아봤어도 그림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봉사에 쓰일 밑천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2013년 6월 34년간 일했던 병원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바로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한국에서 중재적 시술을 연수받기도 했다. 단기 봉사로는 그의 갈급함을 채우지 못했다.

"의료봉사는 '월드메디컬미션'이라는 단체를 통해 해왔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봉사지역을 물색하던 중 에티오피아 시골지역을 찾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길에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한국의 명성교회에서 세운 명성기독병원(MCM)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몇 주간 그 곳에서 지내면서 은퇴 이후의 삶의 정착지는 에티오피아로 굳어져 갔습니다. 급여도 없는 일이었지만 아내는 흔쾌하게 동의를 했고, 2013년 8월부터 명성기독병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12년 설립한 명성의대는 2년 후면 첫 의사를 배출한다. 그는 이곳에서 때로는 스승으로 학문의 깊이를 더해주고 때로는 어른으로서 삶의 지혜를 나눈다. 에티오피아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명성의대 입학정원은 30명입니다. 4년전 입학한 학생들 가운데 현재 17명이 남아 있고, 총 학생수는 98명입니다. 의대 교육 뿐만아니라 멘토링프로그램, 채플 등을 통한 인성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교수진이나 학생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 병원과 연계한 연수프로그램도 계획중입니다. MCM에서는 2030년 병원 운영권을 에티오피아에 이양할 계획입니다. 현재 학생들이 잘 배우고 성장해서 좋은 의사가 되고 병원 운영의 주역이 되길 바랍니다."

틀은 갖췄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한국의 의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속내 역시 이런 이유다.

"사실 이번 방문은 전시회 일정도 있지만 한국의 은퇴한 의사들에게 새로운 사역에 대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셔서 할 일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본인이 전공한 분야를 가르치고 진료하며 지금까지 접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보셨으면 합니다. 모든 분야에 손길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명성기독병원에는 정신과가 개설돼 있지 않습니다. 정신과학 특히 소아정신과학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 없습니다. 은퇴한 정신과 선생님들께서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저희와 함께 해주시면 에티오피아의 의학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그림들은 대부분 에티오피아의 일상을 담고 있다. 그 곳의 아름다운 하늘과 나무와 풀과 바람을 볼 수 있고, 병원 중환자실이나 진료실에서의 애환 깃든 풍경뿐만 아니라 시골장터 소시민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외도' 수준을 벗어난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좋아했습니다.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림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미국에서의 강팍한 삶은 그림 그릴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봉사 현장에서 남긴 크로키에 색을 입히면서 곁에 있는 이들 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됩니다. 에티오피아를 마음껏 화폭에 담고 싶습니다."

내년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은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을 주제로 삼을 생각이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명성의대에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의 후손 2명이 재학중입니다. 그 학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며 실습하는 과정속에 할아버지의 참전 모습을 오버랩시켜 형상화할 생각입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곳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며,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도 의미를 전하고 싶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여호와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심)가 나온다.

그에게는 세상을 향해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살아있는 '행동하는 삶'이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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