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약물 주입 펌프...국내서 처음 운영
약물치료보다 장점...선별급여로도 여전히 '부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진료과간 소통하며 '척수강내 약물 주입 펌프 클리닉'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지난해 8월 클리닉을 문을 열고 올해로 1년을 맞은 세브란스병원이다.
펌프를 이용한 약물 주입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펌프 클리닉의 장원석(신경외과)·신하영(신경과)·조성래(재활의학과) 교수팀을 만나봤다.
펌프 클리닉을 운영하게된 계기가 무엇인가.
국내에서 약물주입펌프 제품이 2008년 들어왔다. 그러나 제품에 대해서 모르는 의료진도 존재하고, 특정 의사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질환의 담당 의료진이 모여 제대로된 정보 공유를 하고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3개의 과가 함께 모여서 클리닉을 만들게 됐다.
현재까지 전체 의료기관의 펌프 이식사례는 60건에 해당하는데, 이 가운데서도 세브란스병원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개별 의료진이 사용하는 것보다,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독보적인 시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척수강내 약물 주입 펌프 치료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해달라.
펌프 치료는 척수의 특정 지점에 약물주입펌프(제품명 싱크로메드)를 삽입해, 만성 통증이나 근육 경직 등 중증 신경계 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의 치료법이다. 국내에는 메드트로닉의 약물펌프만이 도입된 상태다.
주요 적응증으로는 통증과 근육강직이 있으며, 통증 환자에는 모르핀, 근육 강직 환자에게는 바크로펜이 사용된다. 치료대상 질환은 뇌성마비·뇌손상·뇌졸중·척수손상·다발성 경화증 등이다.
기존 약물치료 문제는 무엇인가.
기본적인 약물 치료는 전신에 퍼지기 때문에 해당 부위 외에도 약물이 투입되면서 전신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해당 약물이 신경 신호 전달 체계가 위치한 척수까지 약물 도달이 어려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환자의 경우에는 고용량의 모르핀을 투여하는데도 통증조절에 실패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고용량을 먹어야 하는 환자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약효가 반감되기도 한다.
약물주입펌프의 장점은 무엇인가.
펌프를 이용하면 원하는 부위에 약물을 투입하고 최소한의 양으로도 치료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모르핀의 경우 경구 용량 대비 300분의 1로, 바크로펜의 경우 100분의 1 투약만으로도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 약물 치료로 효과가 없던 환자에게 펌프를 이용해 직접 투여를 시도하니 28%에서 근육강직이 줄어들었다. 제품을 사용한 환자의 92%에서 호전반응이 나타났으며, 88%의 환자에서 삶의 질이 개선된 연구결과도 있다.
대상환자 모두에게 펌프 치료를 할 수 있나.
펌프는 장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우선 시험용 약물을 척수강내로 직접 주사해해 펌프 삽입이 적합한지 선별검사를 해야 한다. 선별검사 후 적절하다고 판단된 후에야 펌프이식수술을 할 수 있다.
펌프이식 후에는 주사기를 통해 약 4~5개월마다 약물을 보충하게 된다. 일일 사용량이 많은 경우, 약물 보충 주기는 짧아질 수 있다.
펌프 시술은 2014년 7월부터 선별 급여 대상으로 전환됐다.
도입 초기만 해도 1500여만원대에 달했던 본인부담액이 800만원대로 낮아졌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기준은 6개월 이상 적절한 통증치료에(약물치료·신경차단술 등) 효과가 없고, 심한 통증(VAS 통증점수 7 이상)이 지속되는 불인성 통증이어야 한다.
또 고용량의 모르핀(1일 200mg) 경구투여·동등 역가의 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 등에도 통증이 제어되지 않는 암성통증(VAS 통증점수 7 이상)이거나 모르핀 또는 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 등 약물투여를 할 수 없는 암성통증(VAS 통증점수 7 이상)으로 여명이 1년 이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도 급여 대상이다.
적절한 경직치료(약물치료 등)에도 불구하고 경직척도(MAS)가 하지 3등급 이상 또는 상지 2등급 이상인 중추신경계 손상에 의한 경직으로 시험적 약물주입술에서 1등급 이상 호전된 경우에도 대상이 된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부담은 줄었지만, 여전히 환자들에게는 높은 비용으로 보인다.
펌프를 이용해야 하는 환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 많다. 선별급여를 통해서 기존보다 부담은 줄어들었으나,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 급여 대상 조건 역시 제한적이면서, 환자에게 돌아갈 혜택은 미미하다. 환자들이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용 부담이 펌프 치료의 단점이 되고 있다. 더 많은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려면 건강보험 혜택으로 비용을 낮춰야 한다.
펌프의 장점에도 불구, 펌프 이식 사례가 높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신경이나 근육을 자르기 보다는 보존하면서 조절할 수 있는 치료를 주로 하는데 반해,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펌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서 펌프를 이용한 치료에 대한 생각이 낮다.
국내에서는 근육강직이나 경직 등의 문제가 있더라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높다. 그러다보니 외국에 비해 국내는 펌프 치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활용도는 떨어졌다.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펌프 치료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나.
1년전만 해도 해당 환자는 거의 없었다. 펌프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어떤 과에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떤 병원에서 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현재도 세브란스를 제외하고는 클리닉 형태로 운영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별과에서 소수로 이뤄지고 있다.
클리닉형태로 협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펌프치료를 활성화 할 수 있게 됐다. 1년전에 비해 3배 이상 환자가 늘었다. 시술은 신경외과에서 이뤄지지만, 재활의학과와 신경과에서 환자 상태를 논의하며 환자의 진단과 치료방향을 정립하면서 효과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비용문제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으려면, 급여 대상에 대한 해당 질환 자체도 넓혀나가야 한다.
앞으로 효과적인 치료 데이터를 모으고, 더 많은 의료진에게 알려 나가고 교육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