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독립된 의료진이 활력징후 감시"...배상책임 60% 제한
수면마취동의서 받았지만 시술·마취 부작용 충분한 설명 불이행 판단
전담인력이 수면마취 환자의 활력징후를 감시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로 통상적인 주의의무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서울고등법원은 A씨의 가족이 B의원 의료진(B·C)과 공동으로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4명(D·E·F·G)의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4억 9475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2015나2032552)에서 배생책임의 범위를 60%로 제한, 2억 8011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열린 1심(2013가합542410 2015년 6월 10일 선고)에서도 배생책임 범위를 80%로 제한, 3억 4734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3년 8월 13일 종아리근육퇴축술을 받기 위해 H의원에 내원했다. 의료진은 15:07경 프로포폴 10cc를 정맥에 주입하고, 프로포폴 40cc와 케타민 0.5cc가 섞인 수액을 시간당 40cc로 투약했다.
15:23경 산소포화도 측정기에서 알람이 울리자 H의원 의료진은 수액 주입을 중단하고, 에피네프린 1cc를 투약한 후 앰부배깅으로 산소를 공급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H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당시 A씨의 맥박은 만져지지 않았고, 심장 리듬이 거의 없는 등 신경학적 혼수상태를 보였다.
8월 14일 실시한 뇌파검사결과, 중증 뇌손상 소견이 나왔으며, 8월 27일 신경과 협진 소견상 뇌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9월 11일 I대학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A씨는 12월 31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사망했다.
A씨의 부모와 형제 등 가족은 마취약물 투약 과정에서 활력징후를 면밀히 관찰하지 않았고, 응급조치 소홀·전원조치 지연 등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렀다며 4억 9475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프로포폴 수면마취시 시술에 참여하지 않는 독립된 의료진이 수면마취의 깊이와 환자의 산소포화도·혈압·맥박수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며 "언제든지 자발호흡이 없어지는 전신마취상태로 빠지거나 심한 심혈관계 저하 부작용이 발생가능한 점을 고려해 호흡억제·무호흡·심혈관계 부작용 등에 대한 처치 약제·의료기구·환자감시장치가 준비한 상태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우리나라 FDA 규정에는 수면마취 중 언제든지 정상적인 기도 유지 기능이나 호흡 또는 의식이 억제 또는 소실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필요시 언제든지 전신마취로 전환 가능한 의료진에 의해 시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힌 재판부는 시술 당시 활력징후 중 혈압을 측정하지 못한 점, 기관내삽관 장치를 준비하지 않은 점, 집도의 외에 수술실에 있었던 간호조무사와 실습생 등이 산소포화도 측정기 외에 망인의 상태를 제대로 감시하고 있었는지 의문인 점 등을 지적했다.
"실제 임상현실상 마취과 전문의나 시술에 참여하지 않은 독립된 의료진으로 하여금 활력징후를 감시토록 하는 것은 현실의 임상수준을 벗어난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B의료진의 주장에 무게를 싣지 않았다.
재판부는 "독립된 의료진에 의한 활력징후 검사의 필요성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한 시인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할 것이고, 경제적 이유 등 현실적인 여러 이유로 의학상식이 실천되고 있지 아니한 관행이 일부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의의무가 임상수준을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저산소성 뇌손상을 초래할만한 후천적 질환이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시술 당시 활력징후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설명의무 위반과 관련해서는 "수면마취동의서에 '드물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야기될 수 있는 합병증·특이체질·우발적 사고 등'이 기재돼 있지만 마취방법의 장단점 및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면서 "프로포폴을 이용한 수면마취 과정의 위험성에 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응급처치 소홀과 전원조치를 지연했다는 원고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동업관계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묻어야 한다는 A씨 가족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들이 하나의 홈페이지를 통해 각자 운영하고 있는 ▲▲▲의원 광고를 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각 사업장이 소재지를 달리해 사업자등록을 한 후 독자적으로 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협진을 하거나 공동출자를 통한 공동수익을 얻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유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