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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에서 만난 이중섭의 '삶과 예술'
무대위에서 만난 이중섭의 '삶과 예술'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6.09.0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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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연극 <길 떠나는 가족>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10~25일까지
▲ 이중섭의 1954년 유화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이 무대의 엔딩에 재현됐다. 예술적 고뇌와 시대의 아픔 속에 방황했던 불운한 예술가가 비로소 자유와 행복의 세계로 떠나는 것을 암시한다.

창작극 <길 떠나는 가족>은 한국인 누구에게나 친숙한 천재화가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예술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1년 초연 당시 이윤택의 감각적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이영란 미술감독의 동심을 자극하는 오브제가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서울연극제 작품상·희곡상·연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연 제목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1916∼1956년)의 유화 <길 떠나는 가족(1954년 작)>에서 따왔다. 그림은 앞에서 소를 모는 남자, 흐드러진 꽃이 실린 달구지 위에 한 여인과 두 아이가 모두 즐겁게 나들이를 떠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리기에 앞서 이중섭은 "아빠가 엄마·태성이·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황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밑그림을 그려 일본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길 떠나는 가족>은 식민시대와 조국분단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궁극의 작품을 그리고자 했던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창작 연극이다.

연극은 식민치하 일본여인과의 결혼, 1.4 후퇴로 인한 남하, 정신병원에서의 죽음 등 예술가를 억압하는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치열한 예술혼으로 맞서는 화가 이중섭의 고단한 삶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무대에 꾸며냈다.

특히 회화적인 오브제, 서도민요와 흥겨운 트로트 풍의 노래 등 낭만적이고도 리드미컬한 무대를 만든 이윤택 연출은 작품이 주는 감동을 강조하며 "이 공연의 승패는 관객에게 진심을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단순히 평면적인 스토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라고 전했다.

 

모든 장치가 사라진 무대, 배우들로 채워지는 공간

불멸의 영혼 이중섭은 스트린드베리의 <꿈>으로 동아연극 신인상을 받은 윤정섭이 맡았다. 그 밖에 어머니 역에 김소희와 함께 오동식·이동준·정연진·허가예·안윤철·신명은·박현승·현슬기 등 연희단거리패들이 무대위 열연을 펼친다.

이윤택 연출은 사실적인 무대장치 대신 살아 움직이는 상징을 만들고자 배우들과 그들이 직접 움직이는 오브제로 빈 무대를 채웠다. 연극적 약속을 최대한 활용하는 시청각적 이미지들은 리듬감각과 공간의 미학을 보여주며 초연에 비해 보다 미려하고 짜임새 있게 완성됐다는 평이다.

또한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소·아이들·물고기·새 등 이영란 디자이너의 오브제들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함께 이중섭의 그림이 돼 그의 예술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하려 했다. 한편 한국 고유 음악에 다양한 장르 결합을 시도하는 김시율이 지난 <피의 결혼>과 <혜경궁 홍씨>에 이어 다시 한 번 회화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

이중섭은 정신이상을 앓다가 30세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 700석이 넘는 농지를 직접 관리하며 아이 셋을 키운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대장부 스타일의 형 중석과 달리 유약한 아버지를 닮은 중섭에게서 어머니는 죽은 남편의 모습을 보았으며,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과 고독한 생활은 이중섭 일생에 걸쳐 모성 콤플렉스로 발현된다.

 

이중섭은 동경 유학시절 운명의 여인 마사꼬(이남덕)를 만난다. 그림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지만 생활은 매우 서툴러 돈을 버는 족족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술값으로 탕진했다.

아내 이남덕이 생활고에 지쳐 아이들과 함께 일본으로 간 후 그는 빨리 가족을 만나고자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1955년 초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 개인전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그림 판 돈을 제대로 수금하지 못했고 이로 인한 낙담은 중섭의 심신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된다.

"세상에 환쟁이 할 일이 뭔가? 난리가 나니 무용지물이야. 평화를 외치고 전쟁을 미워하고 자유의 값을 알고 사랑할 줄 안다 해도, 환쟁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어"라고 이중섭은 자책한다.

민족성은 이중섭을 지탱하는 큰 축으로, 그는 일본 침략주의에 대한 문화적 저항을 그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는 한국의 소와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한국의 대지를 사랑했던 그가 소와 아이들을 통해 되찾고 싶었던 조국의 아름다움과 평화, 생활고로 헤어져야 했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남긴 독창적 화법은 근대 한국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특히 <황소>와 <소>는 각각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국립현대미술관 선정, 2013년) 1위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식민 치하에서도 문화적 주체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이중섭이 일본여인과 결혼한 것은 굉장한 사건이었고 평생 그를 괴롭힌 문제로 남았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길 떠나는 가족> 그림이 무대에 재현된다.

예술적 고뇌와 시대의 아픔 속에 방황했던 불운한 예술가 이중섭…. 비로소 자유와 행복의 세계로 떠나는 듯한 해피엔딩을 떠올리며 비로서 그의 삶이, 연극이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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