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타율' 갈림길에 선 의료계
김국기(의협 의사윤리지침·강령 개정TF위원회 위원장
의사는 다른 직종에 비해 장기간의 의학교육과 수련의 생활을 거친 후 개원의·봉직의·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밤낮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
의사 면허증 취득 후 대부분은 스스로가 모범적인 전문 직업성을 지키고 일상에서 윤리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10만 명 의사 중 극소수이지만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진료행위, 불필요한 검사 및 투약, 성희롱, 음주 진료 등으로 인해 매스컴이나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 신해철 사건이나 다나의원의 주사약 처방문제나 성폭행 사건 등으로 선의의 다수 회원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 이런 비윤리적인 의료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인 의사윤리 강령·지침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윤리적 의료행위 사회적 비난 거세…의사윤리 강령·지침 재정비 필요
2006년 의사윤리 강령·지침이 개정된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변화하는 의학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의료윤리학 교수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추무진 의협 회장의 지대한 관심과 강력한 의지로 2015년 의사윤리 지침·강령 개정 TF 위원회가 구성됐다.
중앙윤리위원 6명과 의학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한국의료윤리학회·의료윤리연구회·대한개원의협의회·언론계에서 추천된 위원 및 간사인 의협 법제 이사 등 13명의 위원이 모인 2015년 10월 1일 첫 회의에서 필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필자는 의협과 의학회의 감사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의협 업무를 파악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산재재심사위원회·국토교통부 공제분과위원회 및 국가보훈처 심사위원으로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연구분과위원장으로 의사윤리지침 개정 등 본연의 직무를 소홀히 해 왔다는 자괴감으로 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기로 했다.
새로운 지침에서는 의사의 사회적 책임과 진료과정에서 지켜야 할 윤리를 강조하되,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도 소홀히 하지 않고 개선을 요구하거나, 개선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밝히려 했다. 음주 진료·유령 수술·의무기록·쇼닥터·샤프롱제도·이해 상충의 관리·의사의 직업 전문성 등 사회적 쟁점이 된 문제를 추가하거나 보충해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사회적 쟁점 문제 추가·보완 개정작업
개정 작업의 충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여러 직능 의사단체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국 시도의사회장협의회·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병원협회가 추천한 위원을 추가로 위촉했으며, 좀 더 전문성을 확보하려고 의료윤리학 교수 두 분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심도 있고, 알찬 의사윤리 강령·지침을 만들고자 했다.
총 18명의 위원 중 4명의 변호사 위원은 법률적 자문 및 어휘 선택 등에 특별히 도움을 주었고, 11차례의 회의와 1회의 워크숍을 거쳐 2016년 8월 말경 일차적인 의료윤리 강령·지침 개정 작업을 완료했다.
개정된 의료지침은 총 6장 45개 조항으로 제1장 의사의 일반적 윤리(11조항), 제2장 환자에 대한 윤리(8조항), 제3장 동료보건의료인에 대한 윤리(5조항), 제4장 의사의 사회적 할과 의무(19조항), 제5장 개별윤리(9조항), 제6장 윤리위원회(3조항) 등으로 구성됐다.
윤리강령은 의사윤리지침에서 표방하고 있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요약하는 선언적인 문서로 만들었으며, 모두 10개 조항으로 필요하면 의료계 행사 등에서 낭독할 수 있도록 문장을 더 다듬기로 했다.
일차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165개 대한의학회 회원학회·여자의사회 등 여러 직능단체의 의견을 받아 반영했다.
이렇게 힘을 들여 의사윤리 강령과 지침을 개정했더라도 의사 회원의 협조 없이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의사윤리강령 및 지침 개정안에서는 윤리위원회에 징계 기능을 두되, 회원들의 윤리의식을 고취하고 교육하는 기능을 같이 둠으로써, 징계로 해결하기보다는 의사회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의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고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담았다.
강령과 지침을 지키지 않는 일부 소수의 회원에게는 윤리위원회를 통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강령·지침 지키지 않는 회원에 대한 강력한 제재 필요
새 지침은 조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 조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계속 해설해 나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의사들은 잘못된 법령인 쌍벌제나 제대로 절차도 갖추지 않는 빈번한 심평원의 현지 방문 등의 타율 규제로 정부가 시행하는 중징계권의 행사에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해서는 병·의원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현행 건강보험제도를 고치지 않고 계속 유지하면서, 모든 잘못이 의료인들에게 있는 것처럼 여론을 돌려놓아 자신들의 책임은 뒤로 감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구나 몇 명의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10만 명 의사의 행정처분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다 보니 당연히 판단은 거칠며, 섬세하게 전문적인 부분을 반영할 수 없다. 의사들이 계속해서 타율 규제를 받는 한 이런 문제들은 해결될 길이 없어 보인다.
의사단체 안에서 자율적으로 규율하고, 윤리 의식을 고취하며, 얼마 안 되는 비윤리적인 회원들의 행동을 막음으로써 대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을 보호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타율규제는 앞으로 점점 많아지고 심해지며, 점점 더 비전문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율규제 심해지면 비 전문적 규제 크게 늘어날 것
그러나 자율적인 규제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도 의사단체 자율적으로 규율하는 권한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 의사들은 직시해야 한다.
징계의 권한을 넘겨주는 순간 제 식구 감싸기로 돌아서서 '합법적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저지를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여기서 우리 의료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단지 의료인을 향한 의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직종이 그런 의심을 받고 있으며, 서로의 윤리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정치가는 물론 학자들도 윤리성을 의심받고 있다.
의사윤리 지침·강령 개정 TF 위원장을 맡은 필자의 생각은 적어도 의사들은 윤리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을 타개할 의욕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의사윤리 강령과 지침 개정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의사단체는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하고, 서로서로를 격려하며, 잠시의 어려움을 견디고, 규제 기관들 또한 여기에 힘을 보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지 의사들의 권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일이며, 국민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