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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신림동 드림마트
청진기 신림동 드림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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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0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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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
▲ 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

큰아들 정의는 고시생
가끔 신림동 드림마트 앞까지 데려다준다
신림동은 커다란 드림마트
아들 또래 젊은이들이
한 모, 또 한 모 자신의 젊음을 베어주고
꿈을 사는 곳
DREAM MART '꿈에 그리던 행복 충전'
T 886-0400
간판을 걸어놓고 드림마트 문 닫혀있다
저 문은 언제 열릴까
전화를 걸어볼까
나도 꿈을 살까
무엇을 지불할까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 몸만 돌아온다
아들이 종일 머물 곳
내 마음이 들락날락 기웃거릴 곳
드림마트 너머로 아침 해 뜬다

지금은 논산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지만 큰아들은 고시생이었다. 그 당시 아침마다 신림동 드림마트 앞까지 데려다 주는 생활을 오년 정도 한 것 같다. 신림동 드림마트 앞에서 차를 돌려오며 만감이 교차하던 그 시절에 이 시를 지었다.

아들은 신림동 공기가 싫다고도, '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고시 공부를 시작한 후 몇 년을 허무하게 보내고 나니 아들도 좌절과 눈물의 냄새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고, 꿈을 이룬 이들은 떠나고, 남아있는 이들은 기약 없는 꿈을 계속 꾸어야 하는 고시촌 신림동 생활 속에서, 부화되지 않은 꿈들이 변질되어 풍기는 냄새를 저절로 감지할 수 있게 된 때문이라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신림동을 관통해 흐르는 도화천변 어딘가를 발굴해 보면, 꿈의 껍질과 함께 마패, 깨진 백자, 필사본 경국대전, 빈 소주병, 조개껍질이 함께 출토될 것이라는 상상과 함께, 김해 패총을 능가하는 규모에 세상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이런 상상을 하며 간판에 '꿈에 그리던 행복 충전' 광고성 문구와 함께 886-0400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드림마트를 지나 돌아오는 길에 어느덧 나도 꿈을 산 듯 느끼며, 그 꿈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스스로 물어보았다. 내가 아들을 믿는 것만큼 아들은 자신을 믿을까? 물음을 조금씩 변주해 보았다. 아들이 자신을 믿는 만큼 나는 아들을 믿고 있는가? 내가 아들을 믿는 것 때문에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믿는가? 아들이 자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나도 아들을 믿어주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서로 믿음의 인플레이션을 조성하고 있는가? 나의 믿음은 근거 없는 아들의 믿음에 기대고 있는가? 아들의 믿음은 근거 없는 나의 믿음에 근거하는가? 믿음에 대한 질문의 변주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믿음은 구름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늘을 모두 덮을 듯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어느 순간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이, 믿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갑자기 내가 산 꿈들이 흔들리는 느낌을 느꼈다. 내가 품고 있던 꿈의 알들이 드디어 부화되기 시작하는 것인가, 아니면 변질되고 있는 것인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정리해 보니 나는 드림마트에서 나의 꿈을 지불하고 아들의 꿈을 구입한 셈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옛 꿈을 지불하고 아들이 주인공이 되는 새 꿈을 산 것이었다.

세월의 강변에 묻어버린 옛 꿈들은 부화되지 않고 화석으로 남겠지만, 내가 새로이 산 꿈은 부화의 시간을 지나 머지않은 장래에 큰소리를 내며 갈라져 새로운 미래를 열며 또 하나의 난생설화를 만들어낼 것을 기원하면서 아들과 함께 날마다 신림동으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드디어 드림마트 문이 열렸다. 신림동 드림마트는 여느 슈퍼마켓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물품들이 진열돼 있을 뿐이었고, 구석구석 어디에도 행복을 쉽게 충전시킬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드림마트 내부에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는 문이 또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문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였을 수도 있었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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