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학회, 학술지 인용 저자에 사례금 논란
학회 다수 유사한 장려책 사용..."윤리 위반"
의학 학술지의 대외적인 평판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인용지수(impact factor)를 의도적으로 올리는 것은 분명한 윤리위반이며, 조작에 해당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자가인용 등 비윤리적인 방법을 통해 인용지수를 늘리기 보다 좋은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도록 학회들이 방법을 찾아야 하고, 이번 기회에 성격이 비슷한 학회지들을 통합하고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본지>는 지난 3월 24일자(www.doctorsnews.co.kr) 'A학회, SCI 등재 위해 인용 장려금 내걸어'라는 기사를 통해 특정 학회가 저자들에게 자신의 학회 학술지를 인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인용을 했을 때 많게는 40만원까지 사례금을 주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추가 취재를 통해 대한의학회 산하 여러 학회들이 학술지 인용 횟수를 늘리기 위해 금전적 유인책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돼, '윤리 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통증학회는 학술지의 SCI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논문 저자들에게 학술지를 인용해줄 것을 요청하고, 인용한 횟수에 따라 사례금을 지급했다.
통증학회는 지난해부터 회원들에게 보낸 소식지를 통해 "(저자가 작성한 논문이) SCI(E)에 채택됐을 경우, 학술지(The Korean Journal of Pain) 인용이 되지 않았다면 해당 편집장에게 참고문헌 추가를 요청해 주면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 "참고문헌 추가를 한 뒤 통증학회로 KJP 인용 포상금 신청서를 보내면 논문의 IF등급에 따라 비용을 1주일 이내에 계좌로 송급해드립니다"고 자세하게 안내했다.
이 같은 내용의 본지 보도가 나가자 통증학회는 회원들에게 발송한 소식지에 있는 문구를 급히 수정하면서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통증학회 편집위원회 관계자는 "잘못된 것을 인정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소식지에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다른 학회들도 통증학회처럼 사례금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 의학 학술지들이 인용지수를 늘리기 위해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본지>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통증학회는 인용지수 장려정책으로 사례금 지급이 10여건에 달하던 것이 50여건으로 증가했으며, 소식지를 통해 사례금을 지급한 해당 저자들의 논문과 이름까지 자세하게 공지했다.
소식지에 편집위원회의 의도와 잘못 기술됐다는 해명은 신뢰성이 떨어지고, 학회가 무리하게 KJP 인용지수를 늘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통증학회 뿐만 아니라 국내 의학학술지 가운데 SCI(E)에 등재되어 있는 학술지도 이같은 장려정책을 쓰고 있고, 다른 대형 학회들도 비슷하게 인용지수를 늘리기 위해 저자들에게 사례금을 지급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학계 한 관계자는 "대한심장학회, 대한고혈압학회, 대한간학회 등도 통증학회 만큼은 아니지만 논문을 제출하거나 인용하면 사례금을 주고, 1년에 한 번씩 학술지를 많이 인용해준 저자를 선정해 시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수의 학회 관계자들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학회들도 장려금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의도적으로 인용지수를 늘리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의학 학술지의 출판윤리를 담당하고 있는 홍성태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장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의편협 차원에서도 학술지의 무리한 인용지수 늘리기의 문제점을 알려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CMJE)에서도 유명 저널 편집인들이 학술지 출판과 관련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통증학회의 인용지수 늘리기는 편집인의 윤리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몇몇 학회들의 이같은 행태들은 대외적으로 한국의 의학 학술지의 신뢰도를 도매급으로 떨어트리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인용횟수를 늘리기 위해 사례금을 지급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덧붙였다.
홍 회장은 "인용지수의 인위적인 상향은 심각한 윤리 위반에 해당하고, 보는 시각에 따라 조작에 해당될 수도 있다"며 "SCI(E) 등재를 관리하고 있는 회사(톰슨로이터스)에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등재되어 있는 국내 의학 학술지들도 저평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에서도 인용지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의학 학술지들의 출판윤리에 대해 의편협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고, 학술지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홍 회장이 언급한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용지수를 올리려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자가인용을 높이는 것인데, 대부분의 편집인 윤리와 관련된 문헌에서는 편집인이 자가인용을 의도적으로 높이는 것을 비윤리적인 행위로 기록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논문에 인용하는 문헌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학술적인 견해와 능력에 의한 행위로, 존중되고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밝혀 통증학회가 저자에게 의도적으로 학술지를 인용해줄 것을 요청하고, 그에 따른 사례금을 지급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또 '만약 편집인이 특정 논문이나 학술지의 문헌을 인용하라고 요구한다면 저자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우므로 분명 비윤리적인 압력으로 작용하기 쉽다. 따라서 편집인은 자가인용의 유혹을 떨치고 문헌인용에 관해서는 저자의 학술적인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학회 한 관계자는 "편집인이 저자자율권 존중의 윤리성을 지키면서 인용지수를 올리려고 노력한다면 편집인 윤리 위반의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윤리적인 인용지수 상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국내 다수 의학 학술지들이 평판을 좋게 하기 위해 인용지수를 늘리려는 꼼수를 사용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학술지의 명성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며 "이번을 계기로 의학계 전체 차원에서 비슷한 학술지는 통합을 하거나 구조조정을 해 질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의편협이 지난해 발간한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20년사>를 보면 국내 의학 학술지 중 SCI(E)에 등재된 학술지는 35종이며, 2014년 기준 평균 인용지수(IF)는 1.45인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