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0.5∼2.9 ppb검출
바른의료연구소 "안전 불감증·직무 유기" 식약처 비판
살충제 성분이 포함된 계란과 발암 물질을 함유한 천연물의약품 파동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식품의약품 안전과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오락가락 행정을 꼬집는 성명이 나왔다.
바른의료연구소는 6일 "전세계에서 노출안전역(Margin of Exposure, MOE)을 식품이 아닌 의약품의 벤조피렌 잔류허용기준 설정에 적용한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 뿐이다. 이로 인해 지금도 환자들은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0.5∼2.9 ppb가 검출되는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다"며 "벤조피렌이 검출되는 모든 천연물의약품을 허가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살충제 계란 파동과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의약품 안전불감증과 직무유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한 바른의료연구소는 "식약처는 천연물의약품에서 검출되는 또 다른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에 대해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식품이 아닌 의약품의 발암물질 잔류허용량 설정에 노출안전역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면서 "노출안전역의 크기는 오로지 우려의 수준만을 나타내는 것이지 위험을 정량화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노출안전역 크기가 105 이상이면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위해 우려가 낮다고 보지만, 종간·사람간 발암성 차이의 불확실성과 가변성으로 인해 106 이상이어도 위해 우려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104 이하라고 해도 위해 우려가 높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106 이상이면 인체 위해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바른의료연구소는 "현재 노출안전역의 크기에 따라 우려 수준을 분류하는 데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없는 상태"라면서 "유전독성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은 DNA 반응성 작용방식을 매개로 하는 발암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용량-반응 관계에서 역치(threshold)란 존재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한 잔류량이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식약처도 2011년 2월 내놓은 '유전독성 발암물질 위해평가 가이드'를 통해 "유전독성 발암물질은 독성을 나타나는 역치가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용량이 증가할수록 염색체에 미치는 손상도 함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한 분자의 유전독성 발암물질이 유전적 변이를 유발할 수 있으며 종양발생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논란은 2013년 4월 2일 언론을 통해 '천연물의약품 중 유해물질 검출'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촉발됐다.
식약처는 설명자료를 통해 "일부 제품에서 벤조피렌이 최대 16.1ppb까지 검출됐으나, 이 제품의 노출량(0.01639 ㎍)을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최대무독성용량과 비교 시 2.7×106 수준(노출안전역 3.7×105)으로 인체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2015년 7월 발표한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천연물신약에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음에도 위해 우려가 낮다는 이유로 사후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식약처에 대해서는 벤조피렌 저감화 조치와 함께 천연물신약에 대한 벤조피렌 등의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고, 발암물질 관리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 지적에 따라 식약처는 2015년 11월 30일 제약사에 분기별로 애엽추출물 함유제제의 벤조피렌 검출시험 자료 제출을 명령하고, 벤조피렌 검출량을 2016년 5월 31일까지 1일 최대 복용량 기준 노출안전역(MOE)을 106이상으로 강화토록 하는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저감화 조치를 지시했다.
천연물의약품의 발암 물질 논란을 부른 애엽은 약쑥 잎사귀로 거의 전량 중국에서 수입한다. 애엽은 건조과정에서 벤조피렌이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엽추출물로 만든 최초 천연물의약품은 위염 개선 효능으로 허가된 동아ST의 스티렌정. 2016년 특허가 만료되면서 총 99품목의 애엽추출물 제제가 시판되고 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당시 정보공개포털 정보목록에 올라있는 '애엽제제 중 벤조피렌 위해평가 결과보고서'와 분기별 벤조피렌 검출시험 자료, 품목허가, 신고 시 제출자료, 식약처가 수거·검사 자료 각각에 대해 제품별로 구체적인 벤조피렌 검출량과 노출안전역 수치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검토 중이고, 제3차 의견 조회 결과, 비공개 요청이 접수됐다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했다.
이의신청을 하자 식약처는 "'문서 내에 포함됐 있는 제품명이 공개될 경우, 넓은 안전역을 확보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제품간 검출치의 차이로 인해 해당 업체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제품별 검출현황 자료를 뺀 나머지 자료를 공개했다.
식약처는 평가결과 시중에서 유통되는 애엽제제 11품목의 벤조피렌 검출량이 0.5~2.9 ppb이며, 벤조피렌 노출안전역은 모두 106 이상이라고 답변했다.
노출안전역을 활용해 천연물의약품의 벤조피렌 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한 식약처는 "노출안전역이 106 이상의 경우 위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의 주장에 대해 바른의료연구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WHO와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2005년 제안한 노출안전역(MOE)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암발생 위험을 대조군보다 10% 초과시키는 유해물질 용량의 95% 신뢰구간 하한치(BMDL10)를 체중 Kg당 1일 인체노출량으로 나누어 구하고 있다는 것.
EFSA의 보고서(2005)도 노출안전역은 식품에서 발견되는 유전독성 발암물질의 위해평가에 적용, 우선관리 대상 물질을 선정하거나 위해관리를 지원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또 2012년에는 식품 및 동물사료에 첨가된 발암성 불순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천연물 의약품 관련 용어는 약사관련 법령에서 삭제된 상태다. 식약처는 2016년 10월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고시를 개정, 천연물 신약의 정의를 비롯해 별도의 허가 요건을 모두 삭제했다.
보건복지부가 2000년 제정한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이 약사법령에 의해 사실상 효력이 정지된 셈이다.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에서는 천연물 신약을 '천연물 성분을 이용해 연구·개발한 의약품으로 조성 성분 및 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고시로 인해 '천연물 신약'은 촉진법에 명문상 규정으로만 남아 있고, 약사법령에서 한약(생약)제제는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으로만 허가를 받아야 한다. 천연물 신약이란 명칭을 쓰거나 표시·광고도 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