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건강 격차

[신간] 건강 격차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7.09.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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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마멋 지음/김승진 옮김/도서출판 동녘 펴냄/2만 2000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통념대로라면 미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15세 소년이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스웨덴이나 영국의 확률보다 낮다. 아니, 코스타리카·쿠바·칠레·페루·슬로베니아보다 낮다. 왜 그럴까?

건강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세계의사회장을 역임한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역학·공중보건학 교수가 쓴 <건강 격차>가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건강에 관한 오래된 통념을 깬다.

사람들이 아픈 이유는 가난해서,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모두가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사회 전반을 건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갖춘 미국에서 15세 소년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의료 시스템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은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 치료를 받을 때 필요한 것이다. 아스피린 결핍이 두통의 원인이 아니듯, 의료 접근성 부족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 가운데서 의사는 무엇을 치료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만드는 사회 여건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의사는 누구에게 무엇을 처방해야 하는가?

역학(epidemiologist)은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학 분야에서는 의사·통계학자·인류학자가 협업해 생활 장소와 양태 등에 따라 인구집단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왜 서로 다른 발병률을 보이는지를 연구한다.

이 책은 역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가 역학자로서 이뤄낸 수많은 연구 성과를 담고 있다. 그의 숱한 실증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여건을 변화시키면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저자의 연구를 근거로 보건 의료 정책을 변경하고 있으며, 바뀐 정책들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책에는 그가 제시한 여러 '낙관적 정책'들의 실효성과 성과가 집대성돼 있다.

저자는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갖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문제는 국가의 부와 개인의 빈부 격차,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 정도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건강과 의료의 문제는 개별 행위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제껏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금주·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행동 교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돼 왔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으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출발선에서의 평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영유아기 성장 발달을 지원하는 사회(4장),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사회(5장), 양호한 노동 여건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사회(6장), 노년의 우아한 생활 여건을 보장하는 사회(7장), 사회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가 유지되는 사회(8장)에서 비로소 개인의 건강과 사회의 건강 형평성이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두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비참함을 조직하는 사회 ▲누구의 책임인가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삶 ▲출발선에서의 평등 ▲교육과 역량강화 ▲삶을 위한 노동 ▲우아한 노년 ▲회복력 강한 지역공동체 ▲공정한 사회 ▲공정한 세계 ▲희망을 조직하는 사회 등을 주요 주제로 구성됐다(☎ 031-955-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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