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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전문의 가산제도의 문제점
요양병원 전문의 가산제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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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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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익(광주·동서하나로요양병원)

▲천 종 익
(광주·동서하나로요양병원)
나는 요양병원 '일반의'다.

1974년, 그때만 해도 인기가 좋았던 소아과 전공의 시험에 합격한 뒤 1979년에 어렵게 소아과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3년의 군복무를 마친 뒤 30년간 '어엿한' 소아과 개원의사로 활동했지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2011년 말에 개원을 접고 2012년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부터 일반의로 강등(?)됐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요양병원에 전문의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몰랐다. 2010년 경 요양병원의 의료의 질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노인병학회를 이끌어 가던 의사 몇 사람이 모여서 요양병원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과·일반외과·신경외과·신경과·정형외과·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 등 8개 과를 선정하고 이 분야 전문의를 의사 정원의 50% 이상 채용하는 병원에는 정부에서 입원료에 20%의 가산금을 주는 방식으로 이 제도가 시행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이 제도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나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위의 유관전문의(요양병원에서 의사 구인 광고를 할 때 이렇게 부르므로 나도 그렇게 적겠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서 진료를 맡기는 것은 그 전문성을 높게 산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요양병원에서 유관전문의는 그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을까? 가령 대퇴골 골절이나 뇌출혈·뇌경색·심근경색·담낭염 등의 위중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당 정형외과·신경외과·신경과·내과·일반외과 전문의는 그에 대한 수술이나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는가? 설령 그만한 실력이 있고 의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인력이나 시설이 요양병원에는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있다고 해도 오히려 요양병원 본연의 역할에 어긋난다.

결국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응급 정도를 판단하고 상급병원으로의 후송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의사의 할 일일 터인데 이것은 비유관전문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8개과 전문의만 있으면 만사형통일까?

8개과 전문의가 다 있다고 해서 모든 질병이 다 해결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노인에서 흔한 배뇨장애·청력장애·이명·백내장·결막염·피부 질환 등에는 각각 비뇨기과·이비인후과·안과·피부과 등의 전문의가 따로 있어야 하겠지만 모두 비 유관 과목이고 또 정확한 x-ray 필름 판독을 위해서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소아청소년과는 언뜻 생각하기에 노인 질환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소아청소년기의 전반적인 내과적 질환을 치료하므로 생리학적·생화학적으로 내과와 가장 가까운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인성 질환을 추가로 공부한다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훌륭한 요양병원 주치의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양병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증 치매환자에서 나타나는 (소위 노망이라고 하는) 이상행동증상·이상심리증상에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도 시중에는 8개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에게 어떻게 내 부모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느냐는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종합병원이 아니다. 즉 환자가 자기의 증세에 맞춰 진료 과를 찾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얘기다. 요양병원은 주치의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건 재활의학과건 전공과목에 상관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해야 하며 또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주치의를 믿고 따를 뿐 그 의사의 전공과목이 무엇인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유관전문의는 자기 전공과목 외의 분야도 잘 알고 있을까? 예를 들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의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정형외과 의사의 전공 분야가 치매 환자의 치료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도 의아하다(또 치매환자에게 재활 치료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유관전문의로 인정하면서도 막상 요양병원에서 정신질환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는 모순된 규정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애초의 목표대로 유관전문의 병원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면 한 병원에 8개과 전문의가 모두 구비돼 있어야 할 터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그런 병원은 없을 뿐더러 (요양병원 거의가 6∼8명의 의사 정원에 3∼4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한의사다)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오더를 낼 때마다 다른 과 의사에게 consult 해야 할 것인데 그때마다 모르는 걸 시시콜콜하게 물어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또 배뇨장애 등 비유관전문과와 관련된 사항도 많을 것이며 게다가 담당 주치의가 노인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의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환자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노인은 노화에 따르는 온갖 자질구레한 증세를 갖고 있는 '걸어 다니는, 아니면 누워 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요양병원 주치의는 한 가지 전공과목의 지식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으며 내과적 지식을 기본으로 하여 비록 깊지는 않더라도 폭넓은 분야에 다양한 경험과 의료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볼 때 8개과 전문의라도 노인병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으며 유관전문의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것은 따라서 자명한 이치다.

지금까지 유관전문의 제도의 허실을 살펴보았다.

2015년 현재 전국 요양병원의 97%가 유관전문의 병원으로 입원료에 20%의 가산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가산점제는 거의 보편화 되어 이미 그 효과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게다가 8개과를 제외한 다른 의사들은 나머지 3%의 병원에만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럼 가산점을 받고 있는 병원에서는 50%의 유관전문의를 채용하니 나머지 절반은 비유관전문의를 채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 나머지는 한의사로 채워져 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의사가 반수를 차지하는 경우는 유관전문의 병원에서나 그렇고 일반 요양병원에서 한의사 수에 제한이 없어 의사 한 사람이 60∼70명, 곳에 따라서 많게는 80∼100명 환자의 주치의를 맡아야 하는 병원도 있다(1등급 병원의 경우 의사 한 사람당 35명 이하를 진료하도록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한의사도 포함된다).

여기서 한의사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아시다시피 요양병원에서의 한의사의 역할은 통증환자에 대한 침이나 뜸 시술이 주다. 그러나 보건 당국에서는 요양병원에서 양 한방이 동등하다고 판단한 듯 요양병원의 규정 의사 수에 한의사도 똑 같이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였는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즉 일정한 정원에서 한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의사의 수는 줄어들게 되는데 양약에 대한 처방권이 없는 한의사는 주치의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의사 한 사람이 보아야하는 환자의 수는 오히려 늘어나게 되며 이는 진료 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보면 한의사 수를 줄이고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현재 상황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인건비가 절감되는 한의사를 최대한 채용하겠다는 병원 경영자를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내 얘기를 하자면 처음 요양병원에 일반의로 취업했을 때 유관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의사들에 비해 봉급이 50∼7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황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 뒤로도 6년 가까이 요양병원 근무를 하는 동안 나름대로 공부하며 경험도 쌓았지만 지금도 요양병원에서는 8개과 전문의만 구한다고 광고하고 있으니 직장이 마음에 안 들어도 옮겨갈 곳도 없으며 어쩌다 옮긴다고 하더라도 일반의사의 처우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몸과 마음이 옥죄이는 심정이다.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장관에게서 똑 같이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의사인데 이런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심한 박탈감만 느낄 뿐이다.

요즘 소아청소년과의사회를 비롯해 산부인과·비뇨기과·흉부외과 의사회에서 해당과의 유관전문의 진입을 위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전문 과목을 늘리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전문의 가산점제 자체가 폐지돼야 하며 정부에서는 유관전문의병원에 지급하는 가산금이 실제 환자의 진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병원에 고루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번 정해진 것은 바꾸기가 힘들다.

8개과 전문의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아쉬울 것이고 이미 가산점을 받고 있는 병원들은 그것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양병원에만 있는 의사간의 차별은 이제는 없어져야 하며 비합리적인 것은 바뀌어야 한다. 요양병원에서는 전문과에 상관없이 의사 개개인의 실력과 품성을 판단해 자기 병원에 필요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한의사를 의사 수에 포함시켜 왜곡된 진료를 불러오는 불합리한 제도도 시정돼야 한다. 침·뜸의 치료에 한의사가 필요하다면 그 수요에 맞게 한의사의 정원을 따로 정하는 등 의사와는 별도의 업무규칙을 준용해 처방권이 없는 한의사를 낮은 인건비를 빌미로 의사와 혼용해 채용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요양병원 근무를 하면서 느낀 불합리한 점들을 적어보았다. 앞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평균수명에 비례해 갈수록 증가할 수밖에 없는 요양병원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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