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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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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곽재혁 원장(피터소아청소년과의원)
▲ 곽재혁 원장(피터소아청소년과의원)

개원 2개월 차. 초조한 적막이 대기실을 점거하고 있던 그때, 한 노인의 목소리가 그 적막을 몰아낸다. 고향의 어느 선지해장국집에 앉아있으면 꼭 건너편 테이블에서 들려올 것 같은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 기대만큼 확 늘지 않는 환자 수에 일희일비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내게 그 목소리는 마치 큰 외삼촌의 안부전화처럼 정겹게 다가왔다.

강할아버지는 혈압약을 받기 위해 소아과를 방문한 어르신 환자였다. '소아청소년과 의원'이라는 명칭 뒤에 '진료과목 내과'라고 쓰여 있긴 해도, 막상 소아과에 어른 환자가 오면 대개 환자도, 의사도 조금은 어색하다. 한데 그분은 거침없이 들어오셔서는 꼭 평가라도 하듯 병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셨다.

진료실 의자에 단정히 자리하신 노신사를 약빠른 눈으로 훑는다. 팔순의 연세에도 자세는 꼿꼿하시다. 입고 계시는 헤링본 모직 코트가 2월 하순의 꽃샘추위를 견디기엔 좀 얇아 보인다. 코트 깃 밖으로 늘어뜨린 캐시미어 머플러도 방한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 같다. 진료실 입구에서 벗어 드신 중절모가 점잖게 가슴 언저리에 가있다.

"드시던 약이 있으신가요?"

그분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두 번 접은 A4용지를 꺼내어 내게 건네셨다. 그 종이엔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눌러 쓴 약 이름과 용법이 적혀 있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그 필체는 아마 할아버님 본인의 것인 듯 했다.

"바깥에 있는 약력을 보니 원장 선생님이 경북대 의대 나오셨더구만. 우리 딸도 경대 의대 나왔습니다. 아마 원장님보다는 한참 위일 겁니다."

"아, 그럼, 저희 선배님이시군요."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면서 약 코드를 만들고 처방을 입력하느라 내 시선이 컴퓨터 모니터로 가있는 동안에도 강할아버지의 따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의대 시절에 수석을 도맡아하시던 따님은 서울의 S병원에서 수련 후 펠로우로 몇 년 계시다가 K병원 교수가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진료와 연구를 열심히 하셔서 환자와 학계로부터 인정받는 의사라는 자랑도 덧붙이셨다.

"정말 훌륭한 선배님이시네요.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려면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의대 선배님의 부친이시라고 하니 처방을 입력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혹시 실수가 없는 지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출력 버튼을 눌렀다.

강할아버지가 가신 후에 가족 조회를 해보니 지난달에 손녀 둘이 먼저 다녀간 기록이 있었다. 할머니가 데려왔던 두 자매. 언니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동생은 5학년 올라간다고 했었다. 내가 특이사항을 기록해두는 칸에 '어머니는 내과 의사, 아버지는 치과 의사'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의료인 가족이 내 진료실을 찾아오면, 설명해야 할 것이 적어서 수월한 경우와 왠지 더 신경 쓰이고 부담되는 경우로 나뉜다. 이 두 자매의 경우는 후자였다. 더구나 오늘 강할아버지로부터 이 두 자매의 어머니가 나의 의대 선배님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선 더 그랬다.

내과 의사이신데도 불구하고 장염 걸린 아이들을 할머니 편에 동네 소아과로 보내고 부친의 혈압 약 처방도 챙길 여유가 없으신 걸 보면, 정말 바쁜 선배님이신가 보다 했다.

봄은 왔고, 내가 환자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환자가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씩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정적에 길들여져 있던 대기실이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움찔움찔한다. 산뜻한 등산복 차림으로 오신 강할아버지는 꽤 북적이는 대기실을 보시고는 흐뭇하게 웃으셨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환자가 많아져서 참 다행입니다. 병원이 자리를 잡으려면 원래 시간이 좀 걸립니다. 앞으로 점점 더 잘될 겁니다."

그 후로도 3번의 봄이 지나가는 동안, 그분은 한 달에 한번 꼴로 꼬박꼬박 방문을 하셨다. 매번 같은 처방이었지만, 오실 때마다 약 이름과 용법을 손수 쓰신 종이를 내미셨다. 아무래도 따님보다는 내가 좀 못 미더워 그러시나 보다 했다.

A형 독감의 대유행으로 분주했던 연말을 보내고 맞이한 개원 5년차 신년벽두. 독감 유행이 한창일 땐 북새통이었던 대기실에 다시 개원 초와 비슷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약 지을 때가 되어 방문하신 강할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종이를 펼쳐놓고 처방을 입력하고 있는데, 진료실을 나가시려던 그분이 다시 뒤돌아서며 내게 뭔가를 보여주신다.

"이게 우리 딸이 해준 처방전입니다."

강할아버지가 보여주신 것은 꼬깃꼬깃해진 처방전이었다. 한 눈에도 오래되어 보였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매번 강할아버지가 손수 써오신 것과 같은 내용의 처방이 담긴 K병원 처방전이었다. '조교수 강○○'라는 이름도 보였다. 그제야 나는 4년이 다 되도록 그분께 따님의 성함을 여쭤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없어. 미국 가 있어."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한 나는, 강할아버지가 가시고 난 후 K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내과 의료진 중에는 '강○○'라는 이름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도 해보았다.

여러 동명이인들에 관한 웹문서들 틈에서 'K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강○○'에 관한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2010년 2월에 <의협신문>에 실린 기고문이었다. 강교수님이 대학 졸업 후 상경하여 K병원 교수로 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강할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내용에서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하고 만다. 2009년 3월 4일, 그러니까 K병원에서 교수 임명장을 받은 지 4일째 되던 날. 아침 회진 도중에 갑자기 쓰러지신 강교수님은 응급소생술에도 불구하고 끝내 숨을 거두셨다고 되어 있었다. 사인은 복부 대동맥류 파열.

'나이 38세. 의대를 졸업하고 12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환자 치료와 연구업적을 남겼고 후학양성과 호흡기내과질환의 진단과 치료분야 발전을 위해 희생적 노력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속에서 총명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이지적인 미인이 바로 강할아버지의 따님이 맞았다. 왠지 풀죽어 보였던 두 자매의 무표정한 얼굴이 고인의 사진에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

'K병원 조교수 강○○'라고 씌어있던 낡은 그것은 바로 교수 임용을 받은 지 며칠 만에 돌아가신 따님이 부친께 드린 마지막 처방전이었나 보다. 강할아버지는 약을 받으러 오실 때마다 그 처방전을 꺼내놓고, 따님이 아버지를 위해 정성스레 입력했을 약 처방을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셨으리라. 

"지금은 없어. 미국 가 있어."

깅할아버지는 8년이 지나도록 따님이 남긴 마지막 처방전을 버리지 못했듯, 당신의 거짓말 속에서라도 따님을 살려두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다음 환자를 부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후로도 강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처방전을 베껴 적은 A4 용지를 들고 병원을 찾으신다. 오실 때마다 혈압을 체크하고 건강 상태를 여쭤본 후 따님이 고이 남기신 처방을 그대로 입력해드리는 것 말고는, 내가 의사로서 강할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걸 찾긴 힘들었다. 나는 그저 조금 더 힘주어 큰 소리로 인사드리고,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소를 보여드릴 뿐이다.

나는 강할아버지께 강선배님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당신의 거짓말 속에서라도 따님을 계속 살려두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강선배님이 계신다는, 그 슬픈 거짓말 속의 미국으로 진료의뢰서라도 한 장 써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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