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CEO 릴레이 인터뷰②]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최근 몇년간 국내 대형 제약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글로벌화'에 매달렸다. 모두 적지않은 투자를 했고 그 중 몇 곳은 글로벌화에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적지않은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진출에 애를 먹으며 선진시장 진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를 실감나게 했다.
GC녹십자 역시 최근 '글로벌 녹십자'가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낸 끝에 올해 면역 글로불린 제품 미국 시판허가와 북미·오창 공장 제조시설 인증을 받으며 선진시장 공략의 의미있는 걸음을 디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대표를 맡아 선진시장 진출에 매진한 허은철 대표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2015년 선임 때보다 부쩍 늘어난 이마 주름과 군데군데 자란 흰머리를 보면서 올해 GC녹십자와 허 대표가 거둘 선진시장 진출의 성과를 기대해 본다.
<일문일답>
녹십자가 지난해 50주년을 맞았다. 회사 CI도 'GC녹십자'로 변경했다.
다 글로벌 진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녹십자란 이름을 쓰는 게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해외진출을 하려다보니 상표등록 문제가 생겼다. 이미 녹십자를 쓰는 회사들도 있다. 하나씩 이 문제에 대응하려다 CI를 바꿔 한 번에 해결을 시도했다.
GC는 녹십자의 영문명인 '그린 크로스(Green Cross)'를 옮겼다. 결과적으로 단순한 영문명칭 변경이었지만 그 과정은 치열했다. 50주년을 맞아 녹십자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도 얻었다. 흩어진 사료를 모으고 당시 관련된 분을 찾아 직접 증언을 듣고 있다. 50주년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반성 많이 한다. '위대한 50년'이란 말을 신년사에 넣은 것도 GC녹십자의 역사를 보면서 훌륭했던 역사를 한 번 뛰어넘어보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였다.
어떤 점을 반성했나?
30∼40년 전 녹십자와 녹십자 구성원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는지 알게 됐다. 혈액제제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위해 온 세상을 뒤지고 독일 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으려고 했던 일화는 신화처럼 읽힌다. 지금보다 부족한 게 많은 시기였지만 다들 헌신적이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혁신적이기도 했다. 'GC녹십자가 과거의 야성을 되찾아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면역 글로블린 '아이비 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미국 시판 허가 여부와 캐나다와 한국 오창 공장의 제조시설 인증 여부가 올해 결정될 것 같다. 둘다 '글로벌 녹십자'의 핵심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FDA가 제조 공정 자료 보완을 요청하는 '검토완료공문(Complete Response Letter)'을 보낸지 1년이 넘어가는데 허가 전망은 어떤가?
고생 많이 했다. GC녹십자가 현재 시점에서 '허가가 난다, 안난다'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이지만 허가가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번 보완요청을 받았는데 허가과정에서 일상적인 요청이다. 선진 혈액제제 시장 미국에서 IVIG-SN을 출시하기 위해 수년간 준비했다. IVIG-SN 승인과 캐나다·오창 공장 프로젝트는 하나의 묶음이다. 잘엮어서 운영할 계획이다. 많은 GC녹십자 임직원들이 관여한 일이다. 글로벌 녹십자의 첫 단추다.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보면 된다.
글로벌 GC녹십자의 행보를 주목하겠다.
GC녹십자하면 혈액제제나 백신을 떠올리지만 사실 혈액제제와 백신 제조는 고전적인 제품이다. 혈액제제로 글로벌 녹십자를 끌고 가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혈액제제로 선진시장에 첫 발을 딛지만 궁극적으로 글로벌 국산신약을 개발할 거다. 항체기반 치료제와 희소질환 치료제 개발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혈우병치료제 그린진과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해외 임상과 진출이 녹록지 않은 듯 하다.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2016년 중단했다. 미국보다는 급성장하는 중국 혈우병으로 선회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판단때문이었다. 현재 중국에서의 출시절차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안에 중국에서 큰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린진에프보다 더 좋은 약도 개발 중이다. 그린진으로 이루지 못한 미국 시장 진출의 꿈을 후속작으로 이룰 것이다.
헌터라제는 일본에서 진행 중인 임상 1/2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임상시험보다 헌터라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임상설계라 일본 임상결과를 보고 미국 임상시험 추진 계획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본에서 하는 임상 1/2상 결과는 올해 안으로 나온다. 미국 임상도 어떻게 할 것인지 일본 임상 결과가 나오면 결정할 거다.
일본 임상시험의 설계가 어떻게 됐나?
예를 들면 헌터라제의 BBB(blood-brain barrier) 통과 정도를 보기 위해 임상을 설계했다. 헌터라제의 BBB 통과 효과가 좋으면 미국 임상에서도 이 부분을 검토할 거다.
헌터증후군이 희소질환이다보니 미국 환자를 모집하기 힘든 것 아닌가?
희소질환이라 환자가 많지 않지만 노력할 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GC녹십자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2017년 매출액은 1조301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순위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다국적 제약사 품목 몇 개만 판매대행하면 몸집은 금방 커진다. 그런 것보다 효율과 실속 품질경영에 더욱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다해도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녹십자는 계속 성장할 거다.
대표이사 4년차다. 계획했던 자신의 목표에 어느정도 달성했다고 보나? 만족할만한가?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
혈액제제와 백신 중심이면서 규모가 큰 녹십자는 늘 전문의약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를 인수합병할 적임자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에는 굳이 국내 제약사를 인수해 전문의약품 판매를 늘릴 필요가 떨어져 보인다.
GC녹십자에 인수합병의 매력은 크지 않다. 적지않은 돈을 들여 굳이 글로벌화와 신약개발이 중요한 시점에서 전문의약품 생산·판매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SK케미칼이 최근 대상포진 예방백신을 내놓는 등 다양한 프리미엄 백신을 출시했다. 상대적으로 기존 백신 강자 녹십자는 프리미엄 품목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하하) GC녹십자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다양한 백신을 연구하고 세계 백신시장과 국내 백신시장의 트랜드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그 와중에 몇가지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조만간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거다.
프리미엄 백신을 출시한다는 말인가?
의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만 얘기하겠다. 다만 GC녹십자는 백신 시장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오랫동안 백신 시장의 트랜드를 지켜보고 있다. 현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으며 GC녹십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