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신고 의무화' '영업 정지' 등 발표
인력·장비 지원 없이 규제만..."탁상행정" 비난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 사건에 대해 정부가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23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신생아중환자실 안전관리 단기대책의 핵심은 '의무'와 '처벌'이다.
정부는 우선 다수 환자가 근접한 시간 내 원인불명의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한 경우 의료기관이 보건소에 신고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다. 개정안에는 의료기관이 준수 사항을 위반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했을 경우 현행 제재기준인 '시정명령'을 '업무정지'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감염에 취약한 수술실·중환자실·신생아중환자실에 대한 정기 실태 점검도 연 1회로 정례화할 계획이다. 실태점검을 통해 일정 기간 이상 된 노후 장비에 대한 점검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신생아 중환자실에 대한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가감 지급할 계획이다.
특히 신생아중환자실에 특화된 감염관리 기준을 만들어 '적신호 사건'이 반복되거나 하위 평가를 받은 기관은 사전 고지없이 불시에 수시조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인력 기준도 강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신생아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경력, 감염교육 강화 등 세부적인 인력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원 방안도 담겼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가 24시간 상시 근무하거나 세부분과 전문의 근무시 입원료 수가 가산 △야간·주말 신생아 중환자실 근무 약사 배치시 수가 지급 △신생아에 대한 주사제 무균조제료 가산 △필수 소모품 사용 확대에 대한 보상 강화 검토 △감염예방을 위한 일회용 치료재료에 대한 별도 보상 검토 △감염예방관리료를 개편해 주기적 감염 배양 감시 등 감염관리활동 수가 반영 등이다.
그러나 수가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의료기관 감염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경종이 됐다.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는 철저히 원인을 분석하고 지속해서 제도를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 발표가 나오자 의료계는 허탈하다는 분위기다. 필연적으로 적자 구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근본 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해법은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다.
감염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들은 입 모아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대한감염학회를 비롯해 대한화학요법학회·대한소아감염학회·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는 24일 공동 성명을 내어 "소중한 어린 생명들의 명복을 빌며, 말할 수 없는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표한다"며 "어느 의료기관에서도 의료관련감염을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감염관리는 어느 한 사람, 하나의 과정, 한 가지 요인이 아닌, 의료 행위의 전반적인 과정과 관련분야에서 제도적·행정적 지원이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감염관리는 병원의 모든 구성원들 각자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감염관리를 위한 올바른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앞으로 의료관련감염을 줄일 수 있는 선진적인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각 의료기관에서 경제적 논리가 아닌 환자 안전 측면에서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은 보건복지부 대책에 대해 "비상식적인 엉터리 대응"이라고 혹평했다. 임 의장은 "의사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모든 과정을 100%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의학의 특수성을 무시한 복지부의 조치는 의사에게 면허증을 반납하고 환자를 진료하지 말라는 의미와 다름없다"고 밝혔다.
업무정지의 기준을 '의료기관의 부주의'로 정한 데 대해서도 "모호한 기준을 의료기관 영업정지의 잣대로 들이대겠다는 것은 의료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관료들이 칼자루를 쥐고 의사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의료계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력 강화 대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25일 "지금까지 소청과 전문의들이 365일 24시간 콜 받을 준비하며 대기하는데 따른 보상이 전무했다는 것을 보건복지부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며 "한 명의 간호사가 네 명의 중환 미숙아를 돌보도록 제도적으로 강요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간·주말에 약사를 배치하면 수가를 지급하는 방안 역시 "야간과 주말에 TPN을 신선하게 제조해 무균 상태로 공급해야할 약사가 낮은 수가에 묻혀 수십 년간 우리나라 미숙아 의료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감염 분야 현장에 근무하는 전문가는 정부 대책을 '탁상공론'이라고 일축했다. 엄중식 가천의대 교수(감염내과)는 본지와 통화에서 "한 병원에서 여러 사람이 사망했을 때 영업정지(진료정지)를 시키고 조사를 하겠다는 방안은 일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부주의'에 대한 정의와 범위, 영업정지를 누가·언제·어떻게 결정할지 모호한 상태에서 무조건 영업정지를 시키겠다는 것은 웃음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또 " 병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를 정지시키면 하루 수 천명의 외래 환자, 수술 대기환자는 어떻게 하나"라며 "정부 후속 대책은 실행가능성이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식 발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