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보건복지부 임의비급여 과징금 처분 취소 판결
"감경 사유 있음에도 일률적 과징금 부과는 재량권 일탈·남용"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 규칙과 보건복지부 고시대로 진료하면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규칙과 고시를 벗어나 '임의 비급여' 진료를 하면 환수와 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처분을 당해야 하는 모순된 의료현실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 또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A대학병원을 운영하는 A학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20억 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임의 비급여' 진료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예외 없이 3∼4배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진료행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위법한 처분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A대학병원이 20억 원대 과징금 처분에 휘말리게 된 것은 2011년 보건복지부 현지조사를 받으면서부터. 보건복지부는 A대학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건보 요양급여기준 규칙)과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보건복지부 고시)을 초과, 4억 7677만 원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을 환자에게 부담시켰다면서 업무정지 50일 처분을 대신해 부당금액의 4배인 19억 708만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의료급여에서 업무정지 30일 처분을 대신해 3977만 원의 3배인 1억 1931만 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A대학병원은 '임의 비급여' 진료를 할 당시 요양급여대상에 편입시키기 위한 사전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고, 치료의 특수성·심각성·시급성 등에 비추어 절차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의학적 안전성·유효성·필요성에 따라 수진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비용부담에 동의했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환자에 대한 최선의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 임의 비급여 진료행위를 했고, 의약품·치료재료 비용 등은 원가대로만 청구해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으므로 3∼4배의 과징금 부과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았다 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요양기관이 증명한 경우 사적 계약을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판례를 확립한 소위 백혈병 임의비급여 판결(대법원 전원합의체 2010두27639·2010두27646, 2012년 6월 18일 선고)을 예로 들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①그 진료행위 당시 시행되는 관계 법령상 이를 국민건강보험 틀 내의 요양급여대상 또는 비급여대상을 편입시키거나 관련 요양급여비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등의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또는 그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비급여 진료행위의 내용 및 시급성과 함께 그 절차의 내용과 이에 소요되는 기간, 그 절차의 진행 과정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를 회피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절차적 요건), ②그 진료행위가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뿐 아니라 요양급여 인정 기준 등을 벗어나 진료하여야 할 의학적 필요성을 갖추었고(의학적 요건), ③가입자 등에게 미리 그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여 본인 부담으로 진료받는 데 대하여 동의를 받았다면(사전동의 요건), 이러한 경우까지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 제4항과 제85조 제1항 제1호, 제2항에서 규정한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받거나 가입자 등에게 이를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다만 요양기관이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더라도 그것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측인 요양기관이 증명하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측이 제시한 의약품 비용(10개 사례)·치료재료 비용(4개 사례)·검사료(5개 사례)·이학요법료(1개 사례) 등 20개 사례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절차적·사전동의·의학적 요건에 따라 일일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이 규정한 업무정지와 과징금 처분에 대해 대법원 판례를 들어 "이는 법규명령이기는 하나 모법의 위임규정의 내용과 취지 및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비추어 같은 유형의 위반행위라 하더라도 규모나 기간, 사회적 비난 정도, 위반행위로 인해 다른 법률에 의해 처벌받은 다른 사정, 행위자의 개인적 사정 및 위반행위로 얻는 불법이익의 규모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안에 따라 적정한 업무정지의 기간 및 과징금의 금액을 정하여야 할 것이고 그 기간 또는 금액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최고한도"(2005두11982)라면서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남용하였는지 여부는 처분사유로 된 위반행위의 내용과 당해 처분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 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하여 공익 침해의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하여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 교량하여 판단하여여 한다"(2001두11083)고 지적했다.
또 "감경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나 감경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오인한 나머지 과징금을 감경하지 않았다면 그 과징금 부과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반한 처분"(대법원 2010두7031)이라는 판례를 들어 과징금을 감경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최선의 진료행위가 요양급여행위로 정하여지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진료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이익의 환수뿐 아니라 업무정지나 과징금의 3∼4배 제재까지 가한다면 이는 오히려 국민보건을 향상시키려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에 반한다"면서 "A대학병원의 행위는 상당 부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치료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병원이 별도의 이익을 얻은 바도 없음에도 의학적으로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진료행위에 대해 예외 없이 3∼4배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병원으로서는 특수한 비용은 지출하지 않은 채 통상적인 방법에 의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이는 환자의 귀중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며,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의사의 진료행위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으로서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한 재판부는 "피고가 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정성과 확실성, 환자의 보험수급 청구권 보호 등의 공익목적을 참작하더라도 재량권을 일탈·남용하여 위법하다"면서 "과징금 금액은 재량권 행사의 기초가 잘못된 것으로 재량의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위법하다"면서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나 법원의 증거조사에 의하여 나타난 증거자료만으로는 정당한 과징금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어 처분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료급여에 관한 과징금 부과 처분 역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에서 A대학병원의 변호를 맡은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5년의 재판기간 동안 수많은 서면과 증거자료가 제출되어 사건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함에도 130여 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일일이 판단한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1심 법원은 2012년 대법원 임의비급여 판결에 따라 허용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허용 요건을 병원측에 입증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현 변호사는 "일부 항목은 임의비급여 예외적 허용요건에 해당하므로 과징금 산정에서 제외하도록 했고, 임의비급여 허용 요건 중 일부를 충족시키지 않은 경우에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과징금 감경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부당 금액의 3∼4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임의비급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임상현실을 감안해 과징금을 감경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지적한 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임의비급여를 다른 부당청구의 유형과 구별해 다룰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서울행정법원 판결을 계기로 임의비급여로 10억 원대 과징금 처분을 받은 다른 대학병원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B대학병원이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10억 원대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은 서울행정법원에서 공판을 계속하고 있고, C대학병원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 역시 1심(패소)에 이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