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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고] 이라크 의료봉사기
시론 [기고] 이라크 의료봉사기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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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근 교수(건국의대/건국대병원 신경외과)

이라크 전쟁의 포화가 멎지않은 지난 4월 말. 장상근 교수는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이라크를 방문하여 의료봉사를 펼쳤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척추에 포탄 파편이 박힌 환자를 직접 수술해 주지 못해 내내 가슴이 아프다"고 밝힌 장 교수는 "보다 많은 회원들에게 이라크의 의료실상을 알림으로써 도움의 손길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봉사기를 쓰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2003년 4월 25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함께 다음 의료 봉사팀이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에 선발팀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하여 4월 27일 이라크 대사관으로부터 이라크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요르단 국경에서 바그다드까지는 약 550Km. 그런데 바그다드까지 가는 도중에 이라크 패잔병들과 민병대들이 나타나 약탈하고 사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들려왔다.

다음날 새벽 0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오후에 공일주 선교사(요르단대학교 교수)의 안내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의 정정섭 부회장과 함께 너보산의 모세의 기념 교회로 가서 우리 모두의 안전과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새벽녘에 사망의 골짜기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암만에서 이라크 국경으로 향하는 자동차를 탔다. 새벽을 가르며 약 5시간 정도 이라크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

차창 밖으로는 광활한 광야이다.
이라크 국경에 도착할 때 쯤 먼 동쪽 하늘에서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차츰 밝아 왔다.

이라크 국경에는 이라크로 들어가려는 차가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라크로 들어가는 비자 수속을 마치고 미군에게 출국 심사를 받고 난 후 사망의 골짜기 같은 바그다드로 가는 고속도로를 시속 150Km로 질주하였다.

도중에 쉬면 이라크 패잔병이나 민병대로부터 습격을 당한다고 해서 소변보기도 힘들 것 같아 음료도 극도로 절제하며 노도와 같이 달렸다. 가는 길에는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도 있으며 불에 탄 탱크, 포, 군 트럭도 여기저기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모습은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바그다드에 도착해서 미군들이 보호해 주는 팔레스탄호텔을 어렵게 잡을 수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바로 우리 의료팀이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보기로 했다. 우리를 안내해 줄 아브라함이란 사람도 구했다.

처음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한 병원을 찾아 갔지만 냉대만 받고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대한민국 신경외과 의사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한 수 가리쳐 줄 수 있고,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것은 냉대뿐이었다. 또 다른 병원에서도 "의료인력은 충분하니 부족한 약만 주고 가라"고 했다.

이라크 의사들은 내 민족은 내가 지키며 치료하겠다는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역사적으로 우수한 민족이라는 대단한 프라이드와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매우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을 보내면서 필자는 낙담과 걱정이 점점 커오기 시작했다. 피곤한 하루가 지나고 새 아침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나서 샤워를 하는 중에 문득 하나님의 음성이 듣리는 듯 했다. "네가 무엇을 할 수가 있겠느냐.

이 곳 의사들의 일에 협력하고 그들을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맑은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치는 것 이었다. 나는 놀라서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정정섭 부회장에게 말을 전했다. 정 부회장도 맞다고 했다. 아침을 먹은 후 그 동안 교만했던 자신을 꾸짖으며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라크의 의사들과 만나기로 작정하고 신경외과 전문 병원인 알주믈라흐 알라스피아병원(Aljumulah Alaspiah Hospital)을 안내받아 찾아 갔다. 역시 그들도 처음에는 의료인력은 충분하니 약이나 장비를 두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절호의 기회를 주신 것은 그들 중에 한 신경외과 의사가 "뇌종양 수술을 하는데 같이 수술하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 필자는 흔쾌히 수락하고 같이 뇌종양 수술을 했는데 매우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 수술 후 이라크 의사들은 자신들과 대등한 의술이 있는 의료팀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알주믈라흐 알라스피아병원장은 "이 병원은 신경외과 전문 상급병원이기에 신경외과 의사만 필요하다"며 필자한테 남아서 함께 진료와 수술을 해 주기를 원했다. 필자는 단 이틀의 여유만 있으며, 다음날 일반외과 전문의 2명, 내과 전문의 1명, 소아과 전문의 1명, 간호사 6명이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니 원장은 다른 일반병원인 아르묵병원을 소개해 주겠다며 소개장을 써 주었다.

그 소개장을 들고 아르묵병원을 찾아가니 그 병원 의사들도 의료인력은 충분하니 약 만 주고 떠나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그들와 좀 더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 아르묵병원에 머무르면서 이라크 의사들와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는 이라크 의사들에게 "당신들이 환자를 진료하는 도중에 협동하며 섬기러 왔다"고 말하면서 마음을 열어 보이자 몇몇 의사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수석 전공의인 듯한 한 의사는 "지금 원장님이 없으므로 다음날 아침에 다시와 달랬습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숙소로 되돌아 가기 전에 현지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현지 교회에 도달했을 때 우리 일행은 매우 놀라야 했다.

미국기아대책기구 일행은 바그다드로 들어오는 도중에 패잔병과 민병대로부터 습격을 당해 물품과 돈을 모두 주고 겨우 목숨만 건져 왔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미국기아대책기구 일행에게 우리와 함께 미군들이 지켜주는 팔레스탄호텔에 여정을 풀자고 권했다.

방이 없어 우리 의료팀 일행을 위해 예약해 놓은 방 2칸을 임시로 주기로 하고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민병대로부터 말레이지아 기자 2명이 사살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날 저녁 정 부회장과 상의한 끝에 두 병원을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의료팀이 계속 지원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 협약을 맺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르묵병원을 찾아갔을 때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장은 "의사들이 전쟁 중에도 병원을 떠나지 않았기에 의료인은 충분하고 의료기자재나 약품을 두고 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냥 돌아올 모양으로 협약서를 거두고 있었는데 동석했던 의사 몇명이 협약서에 서명하자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까스로 원장이 협약서에 서명을 했다. 정 부회장와 미국기아대책기구 일행은 아르묵병원을 둘러 보는 사이에 필자는 미리 수술 예약이 되어 있는 알주믈라흐 알라스피아병원으로 급히 가게 되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의 거리 질서는 혼잡했으며, 사람들의 눈은 증오심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알주믈라흐 알라스피아병원에 도달하여 원장과 만나 협약서에 서명을 받은 후 필자는 수술실로 향했다.
뇌 속에 파편이 박혀있는 환자를 수술하고 나니 원장실에 우리 일행와 미국가아대책기구 일행이 와 있다는 전갈이 왔다. 우리 일행은 이라크 의사들과 병원 발전을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눈 후 협약서에 서명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5월 2일 아침 일찍 이라크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행했다. 요르단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민병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기아대책기구 일행과 다른 몇몇 팀이 한데 모여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돌아가는 길 역시 식사가 문제였다. 한국에서 가져간 햇반을 데우지도 못한 채 생으로 먹어야 했다. 덜컹거리는 차 위에서 흔들리며 삼키기 어려운 햇반을 우겨넣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이번 의료봉사 기간동안 마주한 이라크 국민들의 민족적 자존심와 자긍심에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나라와 대등한 경제 발전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라크 국민들을 돕다보면 우리의 우방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전국의 의사 회원들이 한국기아대책기구와 같이 협력해서 많은 의약품과 구호품을 전달함으로써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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