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처방전이 그리울 때
처방전이 그리울 때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8.02.27 13:4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처방전이 그리울 때
김완
김완

<그리운 처방전>이란 한국의사시인회
제5사화집 출판 기념회가 끝났다
이곳저곳에서 축하의 말들이 오고 갔다
처방전이 사라지고 있다
진료 때마다 챙겨야 했던 필름들도 
손이 닳도록 휘갈겨 썼던 진료 기록지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타과 협진을 위해 썼던 고진 선처의 편지
과장님이 쓴 일필휘지의 손편지를 
해석하지 못하여 내게 다시 물어보던 
손편지는 전자기록철이 대신하고 있다
 
인공지능 의사로 유명한 '닥터 왓슨'은 
의사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몸에 대한 빅데이터를 학습하고 
암 진단이나 치료법을 제시한다
여러 분야의 수술에서 로봇이 수술한다
사라질 직업 일 순위에 의사가 포함돼 있다
 
고민을 털어놓고 오랜 시간 상담받고 
처방전을 받으니 단돈 1500원을 내기에는 
할머니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품속에 꼬깃꼬깃 아끼고 아꼈던 만원을 
기어코 젊은 의사에게 건넨다
 
할머니의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를 받아 든 의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할머니를 대접해도 시원찮은 판에 촌지라니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을 터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온종일 그를 따라 다닌다
 
오래되고 폭신한 냄새는 더 큰 위로가 된다
처방전은 의사가 환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할머니에게 받은 셈이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고 어지러워도 
이런 처방전을 주고 받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
 
'그런 그리운 처방전을 어느 병원에서 구할 수 있냐'라고
어떤 분이 물어오셨다 하하 웃었더니
'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냐'라고
다시 묻는다 우스개 소리인 줄 알면서도
미래에는 의학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으니
가지고 있는 처방전을 오래 보관해 두라 말해주었다
 

*의협신문에 실린 김연종 시인의 글(2017년 6월 16)을 참조해 재구성함. 
 
 

광주보훈병원 심장혈관센터장 / 2009년 <시와시학> 등단 / 시집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