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국회의원 주최, 의협 주관 토론회 열려
의사 처벌, 가족 합의·복잡한 서식 등 걸림돌
시행 한 달이 된 연명의료법이 한 차례 개정됐음에도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름 아닌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존엄한 임종을 돕고 있는 의사들의 요구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16일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 달, 제도 정착을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이라는 주제로 연명의료제도 개선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명의료법, 즉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16년 제정·공포됐으며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법의 골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판단이 선행된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를 시행하거나 중단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정을 법적으로 보호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법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 내용이 취지와 의료현장 사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토론회를 주관한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의사들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오히려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저해하는 경우를 일으키며, DNR(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 불인정과 의사 처벌 조항 등이 제도 정착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대한의학회장)은 "시행 한 달이 안 된 상황에서 한 차례 개정으로 ▲대상 연명의료 추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대상 확대 ▲호스피스전문기관 임종과정 판단 간소화 ▲의사 처벌 완화 등이 이뤄졌지만 제도 활성화를 위한 개선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서식 간소화, 가족 전원 합의, 의식 없는 무연고자와 독거노인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제한적 대리결정 제도 도입, 지정대리인 제도 도입, DNR 제도화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연명의료 관련 문화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립 및 시설 확충, 죽음에 대한 의료인 교육과 의식 개선, 일반인 인식 개선, 임종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필요성도 강조했다.
허대석 서울의대 내과 교수는 법 시행의 생생한 현장 얘기를 전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허 교수는 먼저 "어느 누구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 시행됐지만 의료기관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약하고 지원도 부족해 제도 정착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환자는 본인이 연명의료를 원한 것처럼 인식되게 법이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서류를 작성하지 않는 환자는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임종이 임박한 환자의 보호자가 '아버지 좋아지셨다고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부탁을 하는 것이 현장의 현실이다. 환자에게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 동의를 의무화하는 것은 환자를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연명의료결정 중단을 위해 20여 종의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의료기관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KMA Policy 특별위원회 법제윤리분과위원장(단국의대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규정한 연명의료의 범위와 형사처벌의 범위, 가족의 범위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연명의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해야 하며 연명의료 중단 결정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의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현욱 대한응급의학회 법제이사(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응급환자의 경우 질병의 악화 상태를 미리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대해 미리 준비할 시간 여유가 없고, 이들은 연명치료의 중단보다는 연명치료의 시행 유보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법에서는 현명의료의 중단과 유보에 대해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연명의료 시행의 유보가 필요한 경우에서 법 취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윤리법제위원회 간사(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는 "의료행위에 답을 정해두면 오류에 빠지고, 법적인 제약이 강화되면 의료가 왜곡된다"면서 "경직된 법과 제도는 의료현장을 압박하고 왜곡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료인과 환자의 다양한 가치관, 가변성을 수용할 수 있는 재량을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관리기관에 대한 인력 및 예산 지원, 현장 전문가 자문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의료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가겠다고 약속했다.
박미라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법 시행 한 달이 지났다. 법 시행 전과 시행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한 달 동안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와 이행 건수를 보면 의미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제도를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의료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료계의 지적에 공감한다. 앞으로 그런 의견을 듣는 시간을 충분히 갖겠다"고 말했다.
또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의향서 작성에 대한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관련 예산과 인력 지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 존엄한 임종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도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