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부재의 의미
청진기 부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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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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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서울의대 교수(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는데 무언가 아지직하는 느낌과 함께 흰색의 딱딱한 쪼가리가 나왔다. 치아가 깨진 것이다. 어떻게 이빨이 깨지지? 몸의 일부가 부서져 버린 것 같아 허전하고, 이렇게 내 몸도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싶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불편함은 없었다. 

치과에 가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참고 버티고 살았다. 별거 아니라고 내일이 되면 좋아질 거라고 그냥 무시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아프기 시작한 걸 보니 곪기 시작했나보다. 욱씬거리는 아픔은 통증 점수 5일까 6일까. 아픔은 분명 치아 근처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이렇게 조금씩 바뀌는 건 염증이 생긴다는 신호일까. 처음에는 음식을 씹을 때 왼쪽 아랫니 부분이 시큰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심해져서 이젠 하루 종일 목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하다. 이젠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겠다 싶었다. 

우연히 만난 치과 교수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참을 일이 아니라면서 냉큼 예약을 잡아주셨다. 끌려가다시피 가게 된 치과에서, 선생님은 치아 사진을 보더니 다행히 깨진 이는 어금니가 아니라 사랑니라서 발치만 하면 된다고 하신다.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솜씨 좋게 단숨에 뽑아 주셔서 그다지 아프지 않게 발치를 했다. 

그런데 사랑니만 뽑으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퉁퉁 부은 뺨에는 얼음 찜질을 해줘야 하고 심한 운동이나 빨대로 물을 마시는 것도 조심하라고 한다. 

한동안 마취로 뻣뻣해진 혀와 입술은 다시 제대로 돌아 왔지만, 발음이 어딘가로 새나가는 것 같다. 말을 할 때마다 내가 원하지 않은 발음이 튀어나와서 불안하고, 어둔해진 발음에 왠지 멍청해진 기분이었다. 환자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명료하지 않은 발음 탓으로 정확하게 설명이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혀로 남겨진 잇몸 부위를 괜히 건드려본다. 없어도 살기 지장없다는 사랑니 하나의 부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말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나.

지난 몇 십년 동안 입안에 자리잡아서 익숙해졌던 사랑니가 없어진 채로 발음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이제야 십여년전 이미 사랑니 발치를 경험한 또래들 대화에 낄 수 있을 것 같다. 사춘기 아들이 커서 사랑니 날 즈음에 엄마의 경험 하나 생생히 전해주어야지….

내 몸의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신체의 부재를 경험한다는 것이란 무슨 의미일까? 암으로 몸의 일부를 제거하게 된 환자들부터 외상으로 팔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환자까지, 범위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신체 일부가 사라져버린 후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도 4차 혁명시대에 첨단 과학 기술의 도입으로 앞으로는 로봇 팔과 로봇 다리가 더 잘 만들어질 것이고, 점차 기능을 대체하거나 보조할 의료기기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찬 의료의 미래를 모두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혁신 기술에 기대어 의료는 점차 발전해갈 것이며, 정부가 희망하는 대로 보건의료 분야는 장차 우리나라의 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경제를 성장시켜 줄 전략적 혁신기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에 따르면 몸의 일부가 제거되고 난 다음의 삶은 이전보다 더 정상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요즘은 뭐가 가장 힘드세요?"
"집 앞에 장 보러만 나가도 피곤해서 주저앉고 싶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등산하는 게 이제 버거워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요."

질병이 치료되고 난 후 재활 시기를 겪는 환자들이 호소하는 주된 문제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환자들을 향해 좀 더 운동하라고, 더 활기차게 움직여야 한다고 잔소리하며 빨리 정상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환자들을 붙잡고 설득하려 한다.


"힘들어도 누워있지 말고 조금이라도 움직이세요. 짬을 내서 운동하셔야 해요."
환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기준에 비해 다소 미흡하고 부족한 존재이며 다양한 의료 기술을 통해 정상으로 빨리 회복시켜주는 것이 의료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가끔 부지런히 따라와야 할 환자들이 왜 그렇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질병을 가진 상태에서 빨리 빠져나오게 만들어 주고 싶은 조급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 했다. 세상을 관조하듯 깊어진 눈과 차분해진 동작의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깡길렘은 질병과 정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질병이라는 현상은 과학적 이론으로 완벽히 설명되는 가치중립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가치의 문제가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가치는 철학자들이 말하는 관찰자의 주관에 좌우되는 가치만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재적인 가치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의료를 행하려 하지만, 실제 환자란 과학적 이론과 기술로 해결하기 힘든 생명을 가진 대상이며 가치 중립적인 자연과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종종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 의사의 태도에서 객관적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때로는 환자가 질병을 오롯이 스스로 경험하면서 발견하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이해하고 찾아줄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삶의 주체로서 침울해 하는 환자에게 일상을 버티느라 장하다고, 그거 좀 안해도, 못해도, 괜찮은 거라고, 그동안의 경험은 어떠셨냐고 이야기를 건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환자가 느끼는 신체의 사라짐, 부재의 느낌과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라깡은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결핍되어 있기에 욕망하게 되고, 욕망의 대상이 허상임을 알 때, 그것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결핍되어 있는 주체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오인의 구조적 제한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오히려 성숙한 '타자의식'을 갖게할 수 있다고 한 라캉의 이론은 부재와 결핍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환자에겐 실존적 의미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

부재라는 의미는 늘 우리 인간에게 새롭고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비록 신체의 일부분일지라도, 그는 부재를 실제 경험하는지 모른다. 
"홀로 찻집에 앉아 있다. … 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영합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부재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노리고 있는 이 세속적인 영합으로부터 그가 지켜 주도록 마음속에 그를 소환한다.

내가 빠져들어가는 듯한 이 유혹의 히스테리에 대항하기 위해 그의 진실에 호소한다. 내 세속적인 처신이 마치 그 사람의 부재 탓인 양 그의 보호를, 귀환을 간청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러 오듯이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 이 세속적인 현란함으로부터, 사회적인 자만심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기를, 사랑 세계의 내면성과 장중함을 돌려주기를 간청한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부재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부재를 통하여 그는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보호받았다고 느낀다. 파벌, 야심. 진급, 음모, 동맹, 탈퇴, 역할, 권력으로부터….

부재란 상실과 잃어버림의 동의는 아닐 것이다. 오늘은 과거에 나의 것이 확실했던 나의 신체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있다. 신체의 일부, 삶, 가족, 친구, 사회 등 온갖 부재를 경험하고 있을 환자들의 경험을, 그들이 스스로 부여하고 있을 가치를 조금 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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