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라운 지음/이희원 옮김/책과함께 펴냄/2만 2000원
오늘날 현대의학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술이 본래의 형태와 신념을 망각한 데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를 신뢰로 묶어주던 오래된 전통은 이제 새로운 관계로 대체됐다.
'치유'는 '처치'로 옮겨갔으며, '치료' 대신 '관리'가 중요해졌고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던 의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의료장비가 대신한다. 이런 관계에서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라는 존재는 잊힌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의사들이 과거와 같이 치유자로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할 때 현대의학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
세계적인 심장학계 원로 버나드 라운 박사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풀어간 <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이 책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환자와의 관계보다 의료 기술에만 의존하는 현대의학계에 인간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치유의 진정한 본질에 다가선다.
지금 세계의 의료제도는 위기에 빠져 있고 의사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다양한 의학적 진전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불신은 오히려 더 커졌고 의사들에 대한 반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사들 역시 의료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다. 의사 결정이나 진료에 자율권이 없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할 수도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계속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전문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히 고장 난 신체 일부를 고치는 기술자로 전락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다.
저자는 현대 의료제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의료제도에 닥친 위험은 깊은 근원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인간관계와 행위가 시장 기능에만 의존하는 것과 관계 있다"고 진단한다. 의술이 본래의 형태와 신념을 망각하고,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오던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 단절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고언이다.
이 책은 강조한다.
치유는 과학이 간과돼서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학에만 치우쳐서도 안된다.
치유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하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살펴야 한다.
고통과 두려움에 싸인 한 인간 존재의 운명을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의사는 개인적 특수성 속으로 편입해 들어갈 수 있다.
환자를 질병과 따로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 되는 그 이상의 존재다. 이런 인식아래 환자 각자에 대해 폭넓은 접근을 하면 임상적 상상력이 활짝 열리고, 판단이 정확해지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의 갈등이 줄어든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의사들은 의학적 기술만으로는 판단이 힘든 불확실한 문제들을 다룰 때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다. 환자와 의사간에 서로 대등한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고 환자가 자신감을 얻게 되면 의사도 자신감 있게 치료할 수 있다.
"치료의 비밀은 환자에 대한 관심에 있다."(프랜시스 피바디 전 하버드의대 교수)
모두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진단에 대하여 ▲치유에 대하여 ▲생명과학에 대하여 ▲노년,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의사와 환자 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환자의 역할에 대하여 등을 중심으로 치유의 본질을 찾아 간다.
이 책은 번역한 이희원 박사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의료관련 인문사회 분야에 관심을 갖고 번역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질병은 문명을 만든다> <뇌에게 행복을 묻다> <엄마에겐 지혜를 아이에겐 건강을> <당신은 그래도 아직 담배를 피웁니까> 등의 역서를 펴냈다(☎ 02-335-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