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윤기 흐르던 아내의 갈색 머리에 몇 년 전부터 흰머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보이는 흰머리를 뽑으려 하였더니 머리 숱이 적은 아내는 뽑으면 성기어진다고 만류했다. 염색을 하기에는 흰머리 수가 적고 그냥 두자니 늙어 보이기에 밑둥을 자르기로 했다.
나는 작은 서재 의자에 앉고 아내는 바닥에 앉아서 스탠드로 비추며 갈색머리 중에 흰머리가 보이면 끝을 잡고 따라 들어가서는 뿌리에서 가능한 짧게 약 1cm 정도 남기고 가위로 잘라냈다. 머리를 만지면 졸리기 마련인지 아내는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기대고는 스르르 졸음에 빠지기도 했다. 작년보다 흰머리를 잘라내는 횟수가 한 달에 한번이나 두 번 이상 늘었고 한 번에 자르는 숫자도 한 번에 20개 정도로 늘었다.
며칠 전 아내는 60번째 생일을 맞았다. 같이 살기 시작해 31번째 맞는 생일이다. 아이들 키우느라 매년 약소하게 카드 한 장 쓰고 외식 한 번 하고 넘어갔는데, 올해는 그렇게 소홀히 넘길 수가 없어 이벤트를 준비했다.
아내의 생일 전날 A4용지에 굵은 글씨로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라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영어로 적어서 두꺼운 종이에 붙여서 판넬을 만들었다.
"Yes, my darling you will be always young and fair to me."
유튜브에서 학생시절의 인기가수 '은희'가 부르는 <은발>을 보면서 몇 번 연습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옥상에 올라가서 이 판넬을 들고 일절은 영어로 이절은 우리말로 노래를 불렀다.
제자 둘이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중간 중간에 아내와 내가 최근에 같이 찍은 사진들을 넣었더니 1분 47초짜리 동영상이 완성됐다. 틀어보니 썩 잘 부른 노래라고는 할 수 없으나, 가사만큼은 틀림이 없었다. 동영상을 가족 카카오톡방에 올렸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물었다.
"여보 나 노래 잘해? 이게 당신 생일의 전야제야!"
서재의 스탠드 밑으로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흰머리 좀 뽑자. 내일 외식하는데, 사진 잘 나오려면…."
아내를 바닥에 앉히고 의자에서 내려다보며 흰머리를 찾아 잘랐다. 돋보기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귀에서는 낮에 부른 노래가 울렸다.
"But my darling you will be will be always young and fair to me. Yes, my darling you will be always young and fair to me."
나의 손이 아내의 머리칼을 매만지는 한 그녀는 내게 항상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