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일을 하는 가운데에서 가장 힘든 점은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많은 여러 복잡한 사람 관계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얽힌다는 사실이다. 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는 반면, 우리를 감정의 일방적인 방향의 테두리 안에 가두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의 평화를 밀어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더욱 어려운 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감정적인 판단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을 뒤로 한 채 현실에서 되돌릴 수 없는 판단을 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특히나 의사와 환자라는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더욱 더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성적인 의사와 이성적인 환자가 만나서 건설적인 의사-환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치료 성적 또한 좋게 결론이 나면 얼마나 이상적인 일인 것인가? 물론 사람이 100프로 이성적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긴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이성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이 공존해 있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바로 분출하지 않고 스스로 물어보고 감정의 시작과 끝을 예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기준으로 얘기하면 이성적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 기준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두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성적인 의사와 이성적인 환자가 만나면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지만, 만약 이성적인 의사와 감정적인 환자, 혹은 감정적인 의사와 환자가 만나면 어떤 일들이 생길 지 한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료지식과 치료 주체가 의사라는 점에서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이 말이 인간 대 인간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감정적인 부분이 앞서는 환자들은 의료지식과 치료 주체의 측면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이성적으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의사와 환자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서로 서운한 감정에 호소할 때가 많다.
한남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우리 병원에서는 외국인 환자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들의 국적에 관계없이 단지 외국인 환자라는 면으로 우리나라 환자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외국인 환자가 우리나라 환자에 비해 훨씬 더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부분은 병을 진단받고 난 후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외국인 환자들은 심각한 병을 진단받아도 매우 침착하게 그 병을 받아들이고 때론 몇몇의 외국인 환자에서는 본인에게 병이 생긴 것은 본인 인생의 숙명이라고 할 정도로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놀라운 점은 외국인 환자 대부분이 의료 지식과 치료의 주체가 의사라는 것을 완벽히 받아들이고 불평등한 환자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더욱 놀라운 점은 병을 진단받은 후 또는 치료과정에서도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를 극복하려고 스스로 병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환자를 보면 병을 진단받았을 때 그 반응이 너무 극적인 경우가 많고 병의 원인을 환경적인 탓으로 전이 혹은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또 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주위 의견에 휘둘러서 안타깝게도 이성적으로 치료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때론 감정적인 환자들이 특정 의사와 병원에 과도하게 신뢰를 하고 의지하는 것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인에게 발생한 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또한 병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병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환자 스스로가 조금 더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국인 환자 대부분은 특정 약제를 얘기할 때 성분명을 알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비아그라'라는 특정 회사의 상품명의 성분명인 '실데나필'에 대해 외국인 환자는 정확히 알 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기부전 환자와 상담할 때 외국인 환자에게 관련 약제를 복용한 과거력에 물어보면 '실데나필'이라고 정확히 얘기하는 반면 우리나라 환자는 '비아그라'·'시알리스' 등 상품명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병을 진단 받았을 때 그리고 치료를 결정하는데 그리고 의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무조건 이성적인 것이 좋다고 애기할 수는 없지만 너무 감정적인 것이 앞서는 우리 주위의 사람관계를 보면 조금은 아쉬운 점이 많고, 필자 또한 병원에서 일을 하는 가운데 감정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강해 더욱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환자가 이성적으로 변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또한 이성적 환자이든 감성적 환자이든 가려서 진료를 볼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의사 스스로 환자를 대할 때 과도하게 감성적인 부분에 맞대응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인지해 우리 스스로 더 이성적 부분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
참으로 환자와의 관계뿐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성과 감정을 현명하게 조율해가면서 그 관계를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