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소송' 당할 수 있어…
"검·경찰 공문 받더라도 영장·환자 동의 없다면 주의해야"
수사협조를 위해 검찰이나 경찰에서 '환자진료기록'을 요청했을 때 자료제출은 의무사항이 아닐뿐더러 영장이나 환자의 동의없이 제공했을 경우 '의료법' 및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고소를 당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A의사는 최근 경찰에서 환자진료기록 협조공문을 받았다. 법원 영장 없이 환자기록을 내줬다가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A의사는 해당 내용을 의료커뮤니티에 올려 조언을 구했다. "법원 영장 없으면 주지 말아라", "협조공문이 있어도 환자가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나도 달라고 해서 준 적 있는데 아무 일 없었다" 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A의사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의사라면 A의사의 경우처럼 검찰이나 경찰에서 '영장 없이' 환자진료기록을 제출해달라는 협조요청을 받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영장 없이는 제출할 수 없다고 자르는 경우도 있고, 검·경찰의 요청이라고 아무 걱정 없이 협조하는 경우도 있다. 수사 협조를 위해 환자의 진료기록을 제공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환자 진료기록 제공과 관련된 몇 가지 법 조항이 있다. 그중 의료법 제2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외조항 '형사소송법 제218조'와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료법 제21조에 따르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면 안 된다. 다만 제3항에 나열된 제1호∼제16호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제6호에서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215조, 제218조를 언급하고 있다. 제106조와 제215조는 영장을 필수요건으로 하나, 제218조의 경우 '검사, 사범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에 따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면 안 된다. 다만 제2항에 따르면 정보 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제1호∼제9호의 경우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이 중 '제5호∼제9호의 경우 공공기관으로 한정한다'고 규정하는데, 제7호에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언급된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안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에서 2012년 '수사 협조를 위한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 제공 지침'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수사 협조를 위한 환자 진료기록 제공'에 대해 "진료기록 사본을 제공하려는 경우, 우선 해당 환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며 그러한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 해 제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긴급하게 수사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 외에 진료과목, 처치내용 등 질병 치료와 직접 관계된 사항은 매우 민감한 프라이버시에 해당한다"며 "환자의 동의 없이 진료기록 사본을 임의로 제출했다면 당사자가 의료법 및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소 제기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의료법 '제21조 제2항 제6호'에 규정된 '형사소송법 제218조'를 근거로 수사 목적으로 환자에 관한 기록을 제출할 경우에도 "환자 본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내용은 정보 주체인 환자에 의한 사전 동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힌 보건복지부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른 환자 이익의 침해 여부에 관한 검토가 반드시 선행된 후 제공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서기관은 "'환자 이익의 침해 여부에 관한 검토'에는 요청하는 상대가 진짜 검찰이나 경찰인지 확인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하며 "공문이 아닌 구두로 요청을 하거나 방문 요청을 하는 경우, 검·경찰의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요청 기관에 재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현두 서기관은 "관련 없는 모든 진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사와 관련된 일부의 진료기록만 제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수사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진료기록을 요청하는 대부분은 '환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확고하게 '환자 이익의 침해 여부 검토 및 환자 사전 동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밝힌 2012년도 보건복지부 지침보다는 '진료 정보 제공'에 다소 완화된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서지수 변호사(대한의사협회 사이비의료대응팀)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아닌 이상, 공문요청이건 구두요청이건 관계없이 제출요구에 응할 의무는 없다"며 "의료인의 재량에 따라 침해되는 환자의 이익과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을 비교 형량해 임의로 제출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허용되고 있지만 신중한 판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영장에 의한 청구 없이 의료인이 진료기록부를 임의제출한 경우 상황에 따라 의료법 제88조 및 개인정보보호법 제71조에 의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환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수사기관 요청을 거절했을 경우 수사기관으로부터 증인출석요구나 진술 요구를 받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수 변호사는 "환자의 이름, 연락처 등이 아닌 병명, 진료기록 등은 건강 관련 정보로서 민감 정보에 해당하므로 당사자에게 사전 동의서를 받는 것이 법률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