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질병관리본부 설립...인프라 구축해야
의협 "남북협력위원회 활동은 의사의 책무"
남북화해 협력 시대를 맞아 의료분야 교류협력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원격의료'가 갑자기 언급됐다.
24일 국회의원실 1세미나실에서 열린 '보건의료분야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영훈 고려대 통일의학교실 주임교수는 "북한은 이미 원격의료를 하고 있다. 500만 명이 넘게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김정은 위원장도 '원격의료'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의료 교류를 대비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간 교류·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통일에 대비할 수 있는 의료 기반 조성과 의료분야 교류협력 확대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공동 개최했다.
김영훈 교수는 북한의 말라리아 등 감염병·높은 영아 사망률·요오드 결핍 등 북한의 열악한 보건 현실을 설명한 뒤 "북한 주민건강 및 질병 실태조사와 함께 남북 공동질병관리본부 설립이 중요하다. '남북 핫라인'과 의료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대 및 병원과 1:1 매칭 및 도립병원 내 수술센터 건립 ▲남북협력 평화병원 ▲적정 의료기술개발 ▲의학용어 사전 발간 ▲의료직종 간 학술교류 등에도 무게를 실었다.
패널 토의가 끝나고 이어진 자유토의 시간에 원격의료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김 교수는 "휴대폰이 북한에 많이 보급돼 있다. 그것이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의료 인프라를 위한 원격의료가 이뤄지기 위해 국내에서 먼저 원격의료에 대한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용 전 개성병원장은 "호주, 미국 등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원격의료가 의미 있지만 한국에서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전문위원은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경협확대 전망과 대응 방안' 주제 발제를 통해 "보건의료분야는 비정치적, 비경제적 영역이다. 남북협력은 인도주의적 접근을 통한 상호 신뢰 증진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보건의료 분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전문위원은 "보건의료 격차 해소가 향후 인적·물적 교류 확대를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라며 남북한의 보건의료 격차 현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조 위원에 따르면 남북한의 기대수명 격차는 12년. 북한 영아 사망률은 남한의 7.6배다. 성인 남성 기준 평균 신장차이는 15㎝다.
북한의 우선지원 요청 예상사업으로 ▲결핵·말라리아 예방사업 ▲아동 대상 풍진 예방접종 사업 ▲북한병원 현대화사업 2단계 추진 등을 손꼽은 조 위원은 "남북협력의 방향성은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조건"이라고 밝혔다.
"관계부처와 협력해 식품, 건강기능식품, 필수의약품, 백신 등의 대북 지원원칙과 지원대상 품목을 선정하고 식품업계, 제약업계 등과 협력해 물량 증산, 공급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조 위원은 "보건의료분야 협력증진을 위해서는 북한의 의료인프라, 전달체계, 질병의 종류 및 유병률 등을 충분히 사전 조사하고 의료인력 인적교류와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보건의료 체계의 통합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Health Workforce Regulation(HWR) in Korean Penninsula'에 대해 발표하면서 "어떤 나라도 '인도주의'로 면허를 준 사례는 없다"며 "독일식 상호인정은 남북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뒤 교육의 현대화를 통한 현대적 면허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소장은 남북한에서 각각 발생하는 질병의 차이, 의료의 질적 차이 등을 들어 ▲HWR에 남북한 분단 역사 극복 ▲상호 공동 이익 추구 ▲전문직의 사회적 역할과 국제적 규범 추구 ▲HWR을 위한 하부구조 건설 협력 ▲교육, 전문직제도, 전문직 집단 역량 강화 ▲3차 산업혁명의 후반기 과업인 국제화 달성을 통한 남북한 공동 협력방안을 제안했다.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남북의료협력 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 토의에서는 김정용 전 개성병원 원장, 김영훈 고려대 통일의학교실 주임교수, 최희란 원장(신혜성의원), 인요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남은우 국제보건의료학회 학술이사,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 김진숙 보건복지부 남북협력 TFT 팀장이 보건의료분야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위한 방향과 방안을 제안했다.
최희란 원장은 ▲북한의 보건일군 양성체계 ▲의료전달체계 ▲의사담당구역제 ▲무상치료제 ▲북한병원의 현황 등 남한과 확연히 다른 북한의 의료체계·현실을 이야기했다. 최 원장은 북한에서 평양의료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다시 의사면허를 취득한 경력이 있다.
학교수업이 없는 '통신교육'을 통한 보건일군 양성체계, 지방(중앙-도-군-리)과 도시(시-구역-리-동)의 4차 의료전달체계와 감염병 환자·빈민에서 점차 확대된 무상치료제도 등을 언급했다. "한국에서 가장 놀란 것은 의사 개인이 개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개원은 물론 전문과목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용 전 개성병원장은 의료분야 남북교류 협력 차원에서 ▲열려진 문 활용 ▲통일의학 교육 ▲바이오 메드개발 ▲감염 질환 협력 ▲남북보건의료 협정 등 5가지 중요한 'Five Steps'를 요약했다.
김정용 전 병원장은 "개성협력병원을 통해 남북 의료협력의 단면을 미리 볼 수 있었다. 감염병에 대한 대책 강구 등 감염질환 분야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며 공동체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감염병 대응 협의, 응급환자 대응 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보건의료협정 북한과의 사업은 장거리이므로 길게 보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며 "보건의료분야의 전문가를 개발해 여러 환경과 관계없이 효과적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요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은 남북 교류 이전에 전기나 물 공급 등 북한의 기본적인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력이 높은 남한 의사들이 북한에 갔을 때 현재의 인프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라며 "기술적인 교류가 우선돼야 한다. 의료기기 공급 및 위생적인 의료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진숙 보건복지부 남북 의료협력 TFT팀장은 "의사협회를 포함한 여러 학회, 기업들의 남북 보건의료 교류 및 협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면서 보건복지부에도 여러 문의가 왔다"며 "남북보건의료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통합·통일 상황에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인력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제재국면이라 상황이 여러 가지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교류가 개시됐을 때 전체를 아우르는 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며 "복지부는 오늘 나온 의견을 포함해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참고해 통일부와 협의해 계획 구상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남북관계는 안정적인 단계로 진입했다고 하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의협이 남북협력위원회 활동을 이어온 것은 의사의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 보편적인권으로서의 건강권, 생명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산업적, 법률적, 제도적 부분을 포함한 여러 현안에서 정부·국회는 전체적인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의료계와의 조율이 필요하다"며 "외교환경이 변하더라도 의료협력 부분, 지원 부분을 지속해 생명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남북 간의 보건의료 격차 해소는 향후 원활한 교류 확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결핵, 말라리아, 만성간염 등 감염병과 모자보건사업 분야에서는 남북의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거버넌스와 보건의료 인프라 건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업이 갖고 있는 책임감이나 지식의 깊이가 날로 성장했다. 그런 점에서 외교적 환경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방안을 논의하고 연구하려는 오늘의 토론회가 뜻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