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최장수 입니다. 저의 살아있는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 여름 밤의 납량 특집이 아니다. 이는 2006년 전에 방영된 유오성(최장수 역) 채시라 주연의 KBS 2TV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에 나온 한 장면이다.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 유오성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진이 담긴 초청장을 보낸다. 초청장을 펼친 그들은 순간 자기 눈을 의심한다.
황당한 내용에 헛웃음을 짓기도 하고 괴이쩍은 농담이라 단정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죽음을 갖고 장난칠 수는 없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그들은 최장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확인하곤 눈물짓는다. 안타깝고 처절한 마음으로 대부분은 그 장례식에 참석한다.
유오성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미소에 담아 일일이 악수하며 감사 인사를 건넨다. 악수를 마친 그는 단상에 올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처럼 한 분 한 분 망막에 새겼다. 짧은 정적이 지난 후 전체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주인공. 그 모습에 좌중은 이별을 실감한다. 하지만 우려한 울음바다는 아니었다. 따뜻한 헤어짐을 위해 담담히 받아들이고 마음 깊은 울림을 느낄 뿐이었다.
'살아있는 장례식'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1998년 발간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앨봄 지음)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인데 루게릭병을 앓고 죽어가는 모리교수가 등장한다.
동료교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자 불편한 몸으로 장례식에 다녀온 모리교수는 낙심하여 중얼거린다.
"이런 부질없는 일이 어디 있담. 거기 모인 사람들 모두 멋진 말을 해주는데 정작 주인공인 친구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하니 말이야."
그는 독특한 생각을 한다. 어딘가에 전화 몇 통을 건 후 날짜를 잡았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이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화창한 날 그들은 평상시와 같은 옷차림으로 모리 교수님 댁에 모였다. 행사는 모리 교수가 죽었다는 전제하에 진행됐다. 그들은 평소에 못했던, 그래서 아쉬웠던 얘기들을 솔직히 말했다. 말하면서 몇몇은 울었고 몇몇은 소리 내어 웃었다.
모리 교수 또한 얘기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찍어 누르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했다. 교수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아껴 두었던 얘기를 애정을 듬뿍 담아 털어 놓았다.
'살아있는 장례식'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이에게는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용서 받지 못할 단어가 될 수도 있다. 한편 살아있는 장례식을 알리는 초청장이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거나 곧바로 삭제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죽음에 대한 엄숙함과 무거움, 견디기 힘든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참석자가 거의 없을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세상과의 단절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때문이라고 답한 게 가장 많았다는 설문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육체는 단절 된다고 하더라도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존재하고 관계는 남아있는 게 아닐까. 만약 임박한 죽음 앞에 서서 그 차갑고 막막한 운명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드린다면 생의 마지막은 관계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 중에 실제로 그런 분이 있어서 잠시 소개한다.
그는 2012년에 담낭암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눈을 감은 83세 이재락 박사다. 진단 당시 남은 생을 6개월로 예상했을 때 그는 삶을 마무리할 채비를 하며 의례적인 장례식 대신 가까운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이별잔치'를 계획했다. 초청장에는 양해를 구하는 세 가지 부탁을 넣었다.
첫째는 부의금은 없었으면 좋겠다. 둘째는 옷은 가급적이면 야외 피크닉 차림이면 좋겠다. 특히 여자들은 꽃무늬가 있는 옷이면 더 좋다. 셋째는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침대에 누워 있게 되면 취소될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잔치는 예상보다 갑절이 넘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부조금이나 선물은 약속대로 아예 받지 않았다. 옷차림 역시 부탁한대로 모두 다 밝고 화사했다. 분위기는 야외 행사처럼 즐겁고 유쾌했다. 다행이 이박사의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아 전체 앞에 얘기할 기회도 얻었다.
"암 치료 전문가인 아들의 뜻에 따라 잔칫날을 조금 빨리 잡았지만 현재 암이 자라는 속도가 느려 내가 너무 서두른 감이 있다. 죽을 때가 되면 달라진다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서둘고 서툴고 그런다."
좌중은 떠나갈듯이 웃었다. 웃음 뒤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이 박사는 심지어 운명하기 한 달 전에 장의사에 사후처리를 의뢰하고 비용까지 지불했다. 또한 자식들에게 장례식은 없도록 했고 부음 소식도 모든 게 다 끝난 후에 하라는 유언까지 남겼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떠나야할 길이 아니던가. 평소에 미처 말을 못해 오해를 산 경우나, 화해하지 못해 깊은 상처가 된 경우, 정작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경우가 있다면 살아있는 장례식이 좋은 기회를 제공할 성싶다. 훌훌 털고 홀가분해 진다면 어디든지 쉽게 훨훨 날아갈 수도 있을 터. 남겨진 자들에게는 좋은 추억을 선물하는 게 될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