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종 지음/천년의시작 펴냄/9000원
그의 시에는 의사의 마음이 있다. 의학적 판단의 내력인 처방전은 그에게 진솔한 시의 언어가 되고 시심의 화수분이 된다.
김연종 시인(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이 세 번째 시집 <청진기 가라사대>를 펴냈다.
청진기를 통하는 전해지는 소리들은 의사에게 환자의 고통에 다가서게 한다. 소리가 전하는 의미는 질병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라사대는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고, 불경에서는 '운(云)', 유교 경전에서는 '왈(曰)'이라는 표제로 세상속에 의미를 전한다.
청진기를 통해 전해지는 세상을 향한 울림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김연종 시인은 시집 들머리에 새긴다.
"의학의 현장이야말로 지난한 문학의 현장이다. 문진과 청진은 신산한 삶의 언어이고 처방전은 진솔한 시의 언어이다. 은유의 그늘에 가려 빛을 발할 순 없지만 황량한 벌판에서 외치는 그 현장의 목소리를 나는 계속해서 받아 적을 생각이다."
▲상상플루 ▲슬픈 年代 ▲망상의 앙상블 ▲Exit ▲카우치에서 길을 묻다 등 5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시 66편이 포개져 있다.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단어로서 시행과 시연으로 확대되듯이 시는 세계의 조각을 봉합하며, 전체의 풍경을 절사하면서 의미의 표정을 시적 형식으로 읽어내며 자아와 세계로 둘러싼 사유를 산출시키며' 시들은 서로가 서로를 간섭한다.
나해철 시인의 말이다.
"그의 시어들은 사유의 절정에 닿아 있다. 인간의 몸과 정신계를 지칭하는 의학과 병리학의 단어들이 인간의 삶과 죽음, 슬픔과 고독의 세계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문학과 의학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정신분석학과 임상심리학까지 깊숙이 연결돼 있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거의 유일한 특질을 가진 시들을 묶은 이 시집은 귀중한 자산이다. 반드시 읽고 언급돼야 한다."
황정산 시인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시어들은 삼킨 알약이 되어 의식을 일깨우고 정서를 일으킨다. 망각을 지우고 아픔과 우울을 다시 되살린다. 때로 시들은 메스가 되기도 한다. 굳어진 삶의 상처를 떼어내기도 하지만 깊게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기도 한다. 아프지만 후련하다. 그의 시들은 정신과 상담실의 파우치가 된다. 우리의 무의식까지 들춰낸다. 하지만 쉽게 힐링을 말하지 않는다. 치료를 말하거나 안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하지 않는다. 단지 냉정하고 엄격한 시선으로 우리의 불행을 감시한다. 이 치열한 탐사의 언어는 시인의 정직함을 증명해 준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우리 모두는 불치의 환자다. 이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다."
시집 말미에 해설 '보로메오 매듭과 해부학적 시학'을 띄운 문학평론가 권성훈 경기대 교수는 "그의 시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언어의 배후에는 바로 살과 뼈 그리고 피라는 본질을 사유화해서 내재적 증세를 언어로 전화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배양돼 있다. 그것은 시에서 살과 살 사이, 뼈와 뼈 사이, 그리고 살과 뼈 사이의 어떠한 빈 공간에서 발견되는 무의식의 기표로 채워진다.(중략) 마치 라캉이 말하는 보로메오 매듭과 같이 어느 것 하나라도 끊어지면 모든 것이 다 풀어지는 상징계·상상계·실재계의 세 고리로 형성된 것이 무의식의 겹쳐진 증상으로 나타나듯 그의 시에서 뼈와 살, 피가 교차되면서 언어적 징후로 각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변증적으로 투시된다. 그것은 해부학적으로 내부를 응시하며 신체와 정신기관의 분열·결핍·과잉 등의 현상으로 해체하거나 변형시키면서 존재의 빈 공간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러한 육체와 사물이 가진 특정한 공간의 내재성과 정체성의 부각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보로메오 매듭을 풀 수 있는 '전략적인 탐구'가 아니겠는가"라고 분석했다(☎ 02-723-8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