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 세미나'를 마치고

'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 세미나'를 마치고

  • 유형준(CM병원 내분비내과·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hjoonyoo@gmail.com
  • 승인 2018.08.3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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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속 문학의 재주(在住)'를 중심으로

유형준(CM병원 내분비내과·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유형준(CM병원 내분비내과·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소장)

'재주(在住)'는 '그곳에 머물러 삶'이다. 그러므로 '의학 속 문학의 재주'를 살피는 것은 "의학 속으로 문학이 왜, 어떻게 들어와 어떤 형편으로 지내고 있는가?"라는 궁금증의 답을 구하는 일이다. 

의학과 문학 간의 접경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문학 속의 의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의학 속 문학'의 관점에서 '의학 속 문학의 재주'를 파악하고 고찰하는 '의학과 문학 접경 연구'는 궁금증의 정답에 보다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작품 속 인물이 의학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예를 들어가며 일부 밝혀진 연구 결과를 살펴봤다. 

매독, 시필리스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로나의 개원의사이며 시인인 프라카스트로가 1530년에 발표한 서사시 '매독 또는 프랑스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의 주인공인 양치기 소년의 이름이다. 프라카스토로가 왜 시필리스라는 이름을 택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돼지를 치는 천한 녀석'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수스필리엔(susphilien ; sus 돼지, philien 사랑하다)을 사용했다는 주장과 오비드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니오베의 맏아들 시필루스(Sipylus)를 택했다는 의견이 있을 뿐이다. 

또한 예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을 명명한 영국 신경과 의사 토드(Todd)를 주목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은 루이스 캐럴의 원작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가 겪은 것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 

토드 이전과 동시대의 의사들 누구든지 유사한 시각적 환영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접했을 것이다. 토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1955년 <캐나다의학협회지>에 실린 토드의 논문서론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제목으로 이 환자들의 경험을 기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환자의 상태에 적합한 명칭일 뿐만 아니라 루이스 캐럴 자신도 편두통에 시달렸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게 됐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한다. 신경과 의사인 토드가 읽거나 들었던 어느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보다 앨리스의 상태가 자신의 임상 경험과 일치했을 것으로 간주된다. 

특기할 사항으로 캐럴은 작가인 동시에 <유클리드와 현대의 맞수들>과 <상징 논리> 같은 수학 논리학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수학자였다. 이러한 그의 역량은 자신의 병력을 신경의학자들의 주목과 평가를 받을 만큼 이야기 속에 녹여낸 문학예술적 능력의 기저가 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토드 또한 실력 있는 신경과 의사면서 프랑스어와 독일어에 정통했고, <안톤 체홉; 일반 의사 그리고 사회 의학 개척자>, <영국 소설가 브론테 자매에 관한 논문>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 선 작가 캐럴과 의사 토드의 병력과 그 기저 능력에 힘입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의학 속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의학 속으로 문학이 들어와 재주하고 있고, 그 과정에선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서 문학을 의학 속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반드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의학 속으로 문학이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 더럼 대학 에반스 교수(의료인문학과)는 문학은 의학 속에서 작가의 세계관과 접촉하는 강렬하고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환자를 포함한 인간 이해를 증진시켜 소통 기술, 윤리 의식 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체험을 문자 언어인 글로 표현하는 문학은 의학이 인간적으로 온전하도록 자극 촉진하는 영향을 끼친다. 이를 인문학적 수사로 부연하면 문학이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 문자를 도구로 인간의 무늬에 주관심을 쏟고 있듯이 의학 역시 인간의 무늬에서 시작하고 완결되는 분야다. 

즉, 의학은 병적 변화가 증상과 징후로 드러내는 무늬를 연구하고 실행하는 인문학이다. 더구나 인간의 신체를 실제로 해부하고 나아가서 유전자 수준까지 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선 어느 분야의 인문학자도 넘볼 수 없는 심오하고 세미한 인간 실체를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적 토양에 기초한 의학은 문학이 들어와 살기에 어색하지 않은 거주 환경일 것이다. 이러한 의학 속 문학의 역할과 의학의 인문학적 환경에 더해 의학과 문학이 둘 다 저 깊숙한 인간의 고통과 생명의 의미를 헤아려 그것을 치유하는데 연원을 함께 두고 있다는 견해도 중요한 이유로 인식되고 있다.

이상으로 의학 속 문학 재주의 현황, 과정 및 이유에 관해 살펴봤다. 끝으로 글을 맺으며 의학 속 문학의 쾌적한 재주를 위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연구를 통해 재주의 여러 측면을 좀 더 알 수 있다면 의학 속 문학의 재주는 더 평안해지고, 그 재주가 의학에 보태는 효험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8월 25일 국립중앙의료원 스칸디아홀에서 '의학과 문학의 접경 연구 세미나'가 열렸다(앞줄 오른 쪽 첫 번째 이승하 교수·두 번째 <span class='searchWord'>양훈진</span> 원장·네 번째 유형준 소장).
8월 25일 국립중앙의료원 스칸디아홀에서 '의학과 문학의 접경 연구 세미나'가 열렸다(앞줄 오른 쪽 첫 번째 이승하 교수·두 번째 양훈진 원장·네 번째 유형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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