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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8 11:19 (목)
청진기 가령취(加齡臭·노인 냄새)

청진기 가령취(加齡臭·노인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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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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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에~이 원장님! 옆에 앉은 여자 분은 싫어하죠. 원장님도 이제 그런 연세가 되셨어요. 중년 남자가 옆에 앉는 걸 좋아하는 젊은 여자는 없을 겁니다."

참으로 눈치 없는 친구다. 아부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하물며 대놓고 입바른 소리를 하다니. 언짢다. 젊은 여자 옆에 내가 앉으면 그녀가 싫어할 거라는 말을 듣고서 기분 좋을 수는 없잖은가.

'이제 나도 그런 나이가 되었는가!'
순간 우울해진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니 기분 나쁘면 안 되는데도 사람이 못나서 그런가.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싫어하는 이유가 젊은 남자가 아니어서 일까? 나이 든 어른이 옆에 있는 게 특별한 의미 없이 부담되고 불편할걸까? 아니면 벌써 노인 냄새가 나는 것일까?

그 때 우리는 몇 명이 담소를 하다가 화제가 지하철 좌석으로 넘어간 중이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사람의 옆 좌석은 앉지 않는 게 좋다. 좌석을 넓게 차지하기도 할뿐더러 그런 사람 중에는 몸집이 큰 사람이 많아 앉을 공간이 너무 좁다. 겨우 비집고 앉을지라도 서로 몸이 밀착되기에 숨도 크게 쉬기 힘들다. 차라리 운동 삼아 서있는 게 낫다"고 누군가 얘기할 때였다.

지하철 자리는 무엇보다 젊은 여자 옆이 최고라며 내가 나섰다.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날씬하고 다리도 얌전히 하고 있고, 무엇보다 좋은 냄새가 난다고 덧붙였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나로서는 무슨 노하우나 된 것처럼 신바람을 낸 게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다국적 제약사 임원급 되는 친구가 그렇게 되받아치다니…….

사실 나는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주 실감한다. 순간 집중력이 떨어져 배 아프다는 환자의 청진기를 가슴에 댔다가 얼렁뚱땅 넘어간 경우도 있었고, 단어가 입가에서 맴돌기만 할 뿐 떠오르지 않아 모임의 사회를 보다가 당황한 경우도 있었다. 운동을 해도 근육 붙이기가 어렵고 조금만 게을리 하면 근육이 처져 보였다. 그리고 요즈음은 수컷의 향기는 고사하고 흔히 말하는 노인 냄새가 나는지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얼마 전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3일 동안 대진을 여선생님께 부탁한 적이 있었다. 휴가를 다녀오니 내 책상 위에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탈취제가 놓여 있었다. 직원은 환자 중에 냄새가 심한 사람이 있어서 대진 선생님이 사용했다고 얼버무렸지만,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내게 가운도 자주 갈아입으라고 하고 진료실 수건도 자주 바뀌는 느낌이 있었다. 평소에 별로 땀을 흘리지 않던 내가 워낙 더운 날씨 탓에 땀을 비 오듯 쏟아내서 그런가보다 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내게도 무슨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더니 눈을 슬금슬금 피한다.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이라고 서둘러 말하고는 자리를 뜨는 것이다. 불안했다. 그 대답을 물론 신뢰하지 않는다.

아내로부터 '술을 적게 마시고 빨리 귀가해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면 반드시 택시를 타라. 여러 사람에게 술 냄새로 고문하지 마라. 겉옷도 자주 갈아입어라. 운동을 해서 땀을 자주 흘려라. 밥 먹었으면 곧바로 양치를 해라' 등등 잔소리를 들을 때는 아내의 후각이 대단히 예민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게으름을 피웠었다. 사실 아내가 '개코'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술 마시고 들어와 양치를 하고 짐짓 모른 체하고 누워도 아내는 다 알아챈다. 무슨 술을 마셨는지, 섞어 마신 술이 무엇이었는지 맞힌다. 심지어는 무슨 안주를 먹었는지까지 맞힐 때가 많다. 그러니 냄새와 연관된 아내 잔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거고, 나는 잔소리려니 생각하고 적당히 흘러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진 선생님과 직원들 태도로 미루어 보면 상당히 걱정된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친구가 일독(一讀)을 권한 라이얼 왓슨이 쓴 <야콥슨 기관 코>를 얼마 전에 읽고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여러 얘기들이 있었지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헬렌 켈러 얘기였다.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말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7살에 글을 깨우치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게 촉각과 맛 외에도 냄새가 중요했다고 한다.

그녀는 특히 후각이 발달했는데 폭풍이 오기 몇 시간 전부터 기대감에 의한 두근거림, 약한 떨림, 콧속의 농후한 감각으로 폭풍을 느끼기도 했고 냄새의 배치에 의해 경치를 묘사할 수도 있어서 풀밭, 헛간, 작은 소나무 숲 등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그녀는 "친한 친구를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만났는데, 그곳이 아프리카 한복판이라고 해도 그의 냄새를 직접 알아볼 수 있었을 겁니다"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독특한 체취가 있다는 것인데, 내 몸의 냄새가 이제는 노화에 의해 남에게 피해가 가는 냄새로 앞으로는 기억될지도 몰라 불안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나이가 더해짐에 따라 나는 냄새'라는 의미로 가령취(加齡臭)라는 용어를 사용해 부드럽게 포장해보지만 결국 노인 냄새는 불편한 사실이고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냄새는 결국 40대 이후에 호르몬의 변화와 신진 대사 감소 여러 장기(臟器)의 기능 저하로 발생하는 게 아니던가.
피부에서는 피지 지방산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노넨알데히드(Nonenaldehyde), 호흡기를 통한 암모니아 초산, 발 냄새 원인인 이소길초산(Isovaleric), 여기에 배설과 연관되면 냄새는 더욱 가관일 게다. 그런데 어쩌랴. 그게 삶의 과정이고 자연스러운 절차이거늘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허나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곱게 늙어가는 웰에이징이 있듯이 방법이 왜 없겠는가. 서서히 다가오는 노화의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부족한 것을 기꺼이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지 싶다.
비단 그게 냄새에 국한된 일도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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